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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장난감은 안사도 그만이다.

by 아인잠

막내가 한 번씩 뭘 사달라고 그러면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런 건 정말 얄궂다, 만원이나 하는데 몇 번 갖고 놀다 보면 눈길도 안 가는 거야.”

사주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 장난감 돈 만원 갖고 가서 살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산다 해도 정말 ‘얄궂은’ 장난감들이 많다.
“그 돈으로 고기 구워 먹자,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 사 먹자, 그 돈으로 저금하자”
그러고 보니 자주 그랬다 싶다. 나의 금 같은 돈을 얄궂은 장난감을 사는데 쓰기에는 솔직히 넉넉지 않은 형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무슨 재벌이라고 해도 정말 사고 싶지 않은, 구매욕구 제로를 가리키는 장난감들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엊그제 막내가 사람들 많은 데서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이런 얄궂은 가방을 메고 다녀?”

‘응...? 얄궂어? 으흐흐흐....’

사람들이 다 웃고, 그런 표현은 어디서 배웠냐고 했다.
‘어디긴 어디겠어요, 제 입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daum 사전에 찾아보면 ‘얄궂다’는 ‘평소와 달리 이상하고 짓궂어 얄밉다’는 뜻이다.
얄궂다가 이렇게 나의 뒤통수를 치고 들어올지는 몰랐지만, 막내가 정말 사고 싶은 순간에 ‘얄궂다’라는 말로 한방에 날려버린 그 기회가 막내 입장에서는 섭섭하고 속상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얄궂은 가방’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거 엄마 친구가 선물해준 거야.”
“근데 완전 시장가방 같아”
‘그래, 이거 시장 갈 때도 쓸 수 있는 가방이야, 편하고 엄마는 가벼워서 좋아 “
“그러니 얄궂다고, 이쁜 가방은 아니야.”
말이야 맞는 말이라 더 반박하기엔 내가 염치가 없었다.
앞으로 진정 얄궂은 상황이 또 있겠지만, 다짐했다.
아이 면전에 대고 너의 선택이 ‘얄궂다’고는 하지 않으마!

얄궂은 가방이나 얄궂은 장난감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군가의 최선일 수 있다.
한 번에 얄궂은 존재로 만들어버린 나의 선입견과 이유는 어쩌면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한 여우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애가 셋이니 장난감을 사면 세 개를 사줘야 해서 우리 집은 예전부터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았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레퍼토리를 읊자면 아이들은 몇 번 들으면 아는 내용을 또 하는구나 생각하고 아예 마음을 접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형편껏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난감을 늘리는 것은 사치이고 이 지구 위에 쓰레기를 더하는 행위이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면 신념이다.
‘엄마가 장난감보다 더 큰 재미와 만족을 줄게,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장난감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어릴 때 갖고 싶은 장난감은 계속 마음에 허기가 진다. 돌아서도 돌아서도 계속 생각나는 장난감이라면 기어이 사줄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아이들도 알고있다. '안사도 되는' 장난감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컸을 때 정말 갖고 놀고 싶은 장난감이 생겼을 때 제대로 사줄 수 있는 엄마, 제대로 선택하고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 갔으면 좋겠다.
장난감 자동차보다는 나중에 자동차를 사자고 하니 아이들이 웃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사고 싶은 자동차를 정하는데 인터넷에서 사진을 쭉쭉 뽑아서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 우리들만의 자동차 놀이는 박스도 되고, 종이로도 가능하다. 이야기로도 가능하고 그림으로도 가능하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어차피 한 번 사면 헌 것 된다.



by 아인잠's girl

*못사줄때 마음은 사실 가볍지않다...돌아서는 엄마 마음이 더 무겁지만 저금통이 묵직해지는 기쁨도 가르쳐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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