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화 <주노명 베이커리>에 나오는 대사이다. 사랑과 빵을 비교해나가는 대사가 참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영화를 보면서 흔치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특별한 대사로 다가와 남겨지는 선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글을 쓰는 직업이어서 그런지, 영화를 볼 때면 대사에 집중해서 보게 된다. 시나리오 작가가 어떤 대사를 쓰는지, 내용을 '말'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몹시 설레일만큼 궁금해진다.
영화 <올드보이>에 보면 주인공이 자신이 한 악행을 기록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난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보니 많았다, 너무 많았다'는 장면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생각할 것도 없이 작년 한 해의 잘못만 적어본다고 생각할 때에, 나 역시 같은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무난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보니 많다, 너무 많다...
예전에도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서 나는 컴퓨터로도, 일기장으로도 많이 글로 남겼다.
그중에 선배가 나에게 한 말이 남아있었다. 내가 영화를 보고 와서 잘못한 일을 적어보겠다고 앉아있자 선배가 말했다.
"그것 적어서 뭐할래? 그냥 잘한 것을 적어보지 그래..."
그러면서 선배는 나에게 '나쁜 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쓰는 것을 관뒀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잘한 것을 적어보려니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저 컴퓨터 화면에 커서만 깜박깜박... 잘못한 것을 적기도 쉽지 않은데 잘한 것 찾기도 만만치 않다. 잘 못한 것을 적으려니 그래도 그건 노력한 일이니 잘한 일이라 적고 싶고, 잘한 것을 적으려니 그렇다고 크게 잘한 일 같지 않는 분명치 않은 느낌. 선을 넘을 수도 없고 남을 수도 없는 어디에 서있어야 할지 모르는 느낌. 그 애매한 시기가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청춘은 방랑의 시대이기도 했으니.
그래서 결국은 뭐라 적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그것도 관뒀다고 일기에 쓰여있다. 그러고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게 맞는 걸까 고민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아마, 유난히 '선택'하기 어려운 해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간들이니."
2020년, 나에겐 올해도 그런 해이다. 새로운 시간이고, 어쩌면 유난히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열심히 살아야 하기는 마찬가지, 오히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특별한 해에 이제 2월. 새해가 시작된 지 아직 두 달이 지나가지 않았으니, 아직 새해의 시작을 힘차게 도모해도 전혀 늦지 않고, 잘못을 돌이키기도 좋은 타이밍이다.
2004년, 이맘때의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최근에 들었던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혹시 아니?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인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잘 생각했다, 해봐도 아니면 말고~"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랬었구나..."
"앞으로 더 잘 되실 거예요"
사람들은 서로에게 주옥같은 말들을 하기도 한다. 사람의 말에 엄청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의 말로 굳건해질 수도 있는 것이 말의 힘이고 생각의 힘이다. 이럴 땐 사람이 참 좋다. 언제든, 결국엔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