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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동맹은 계속된다, 쭉

by 아인잠

둘째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한 두 달 뒤 집에 돌아와 지내다 보니,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왔다며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납작한 박스를 열어보니, 아기 내복이 들어있었다. 회사 여직원이 줬다고 했다.

의례 들어오는 선물들이라 고맙게 받겠다고 인사를 하려다 보니, 내복 안에 작은 카드가 하나 있었다.

선물에 카드까지 적어 넣는 사람이 그때에도 흔하지는 않아서 기분이 확 좋아지고 어떤 고마우신 분이 이렇게 카드까지 넣으셨나 하고 기쁘게 열어봤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잘 본 걸까.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아이 출생을 축하한다는 간단한 글귀와 함께 이렇게.

"우리의 동맹은 계속된다, 쭉~"


얼씨구.

동맹이라니?

남편 말로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고, 계약직이랬나 뭐랬나, 많이 알려주고 일을 도와줬더니 고마움의 표현을 그렇게 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나도 넘어갔다. 동맹을 하든 뭘 하든 이상하게 별일 아니게 느껴지고, 별일 이어 봤자 나는 쿨하게 이혼이라고 소싯적부터 생각했다.

나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든 살림을 차리든 울고불고 열 받지 않는 성격이다. 그냥 쿨하게 스치듯 안녕이다. 내 성격은 '떠날 때는 안녕'하자는 주의다. 가는 버스 막지 않고 오는 버스는 봐가며 막는다.

그리하여서 그 사건도 넘어갔는데, 이상하게 그 카드 글자는 잊히지 않는다.

사회생활 처음 하는 순진한 아가씨가 참으로 순진하게 쓴 카드였다.

아기 낳은 유부남-첫째도 아니고 둘째 아들을 낳은 상사에게 아이 내의를 선물하면서 그런 카드를 쓸 때는, 그 카드를 남자가 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아이 엄마가 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던 걸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내용을 썼을 정도로 참으로 순진한 아가씨라 여겼고 이쁘게도 생각했다. 마치 철없는 막내동생을 떠올려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야 그땐 제법 한 3일 정도는 신경이 쓰인 일이 발생했다.

회식 후 새벽 3시인가 남편이 귀가했는데, 남편이 씻으러 간 사이에 남편 핸드폰으로 문자가 온 것이다.

뒤져본 건 아니고, 알람이 뜨길래 손도 안 대고 눈으로만 살짝 봤다.

내용은 이랬다.

"잘 들어가셨어요?"


회식 후 술 마신 여직원 몇 명을 남편이 대리 운전기사로 자처한 모양인데, 어느 여직원이 새벽 3시 반 경에 유부남한테 친절하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고마움의 뜻으로. "잘 들어가셨어요?"


이건 솔직히 한 3일 기분 나빴다.

나도 결혼 전에 늦은 시간 동료나 선배나 유부남이 나를 포함한 여자 선후배들을 집에 데려다준 적이 있지만, 유부남이든 안 유부남이든, 나는 다음날 출근해서 인사했지 야밤이나 새벽에 문자로 직접, 바로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센스 없음이 딱 봐도, "우리의 동맹은 계속된다, 쭉~"이라고 쓴 눈치 없는 아가씨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서, 여자 예감으로 딱 봐도 같은 사람이 쓴 문자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어쩜 이리 한결같이 얼빠질 수가.


다른 사람이라 해도 기분 나빴다. 세상에 얼빠진 여자들이 이렇게 많아서 순진한 남자들하고 잘못 엮이면 골치 아파질 테니 말이다. 아니면 반대일수도 있고.


계속해서 동맹을 쭉 했었든, 계속 잘 들어갔는지 확인을 했었든 나야 그 뒤로 모르겠지만, 남편이 똑똑했다면 '누구'와 과연 '쭉' 동맹을 했었어야 했는지는 본인이 잘 알터.


우리의 동맹은 결국 쭉~ 되지는 못하고 삑사리가 났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남편이 개과천선하여 아이들과는 쭉 동맹체제를 구축한다면, 나야 대 환영이고, 그래도 사람이 영 나쁘지는 않구나 하고 안도할 것이다.


사람이 동맹을 해야 할 대상을 잘 골라야 끝까지 살아남고 자자손손 대대로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동맹은 같은 운명체다. 잘못 맺으면 같이 망하고, 잘하면 같이 흥한다.

내 삶의 동반자는 누구일 것인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지, 아가씨들이여 부디 상황 판단을 잘하시길 두 손 모아 빌어드리는 바이다.



# 혹시라도 그럴일이 없겠지만, 세상엔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만약에 '동맹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그래 바로 당신.

"당신의 동맹은 안녕하십니까?"


20170719_155016_edit.jpg 자나깨나 동맹조심, 꺼진 동맹 다시 보자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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