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도중인 예비 중 1 여학생의 글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서 마치 내 아이 같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매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녀석이기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도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가르쳤는데 변화가 없다면 회사라면 당장에 '사표 제출하세요!'라는 말을 들을지 모르므로. 겁이 나서.
'나는 행복하다고 가끔씩 말한다.
문제는 반어법으로 말한 것을 사람들이 진짜로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은 오해를 잘한다. 여기에다 왜 행복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이 글이 나오게 된 배경은 나 때문이다.
수업 중에 쓰기 과제를 줬더니 아이가 (안 쓴다고 해봤자 끝까지 쓰게 할 것임을 알기에) 나를 단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행복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행복해? 좋은 표현인데? 그렇게 말한 이유를 글로 한번 써보자?"
역시 아이는 괜히 말했다는 울상을 장난스레 지으면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이 이 글이다.
글을 쓸 때 머뭇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나는 제시어를 지정해서 다시 준다.
이번 지시어는 세 가지였다.
'문제는', '즉', '여기에다'
그래서 '행복하다'라고 잘 못 뱉은 말로 글쓰기 과제까지 떠안은 녀석은 내가 내민 지시어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냈고, 한 번 성공하면 다시 또 다른 문장으로 쓰게 한다.
그래서 같은 지시어로 두 가지의 간단한 글이 나왔다. 이런 연습은 문맥을 잇게 하는 글쓰기인데 논리적인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틈틈이 연습을 시킨다. 한 편의 글을 논리력을 갖춰서 완결되는 분량과 수준으로 쓰게 하려면 금세 지치기 때문에 짧은 글을 반복해서 훈련하고, 점점 거뜬히 쓰는 자신감을 스스로 느껴가면서, 한 편의 글로 주제를 정해서 완결 편을 써보게 한다.
나의 선생으로서 특징은 '끝까지 쓰게 한다'이다.
수업 중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런 말이다.
'와~ 선생님, 진짜 선생님은 끝까지 쓰게 하시네요.'
'역시 선생님 앞에서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돼, 말을 하면 멋있다고 글로 써보게 하고, 잘못하면 글로 제대로 쓰게 하고, 이래도 쓰라하고 저래도 쓰라하고, 쉬지를 않으시네요.'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듣고 있다.
어른에게는 안 통해도 아이들에게는 통한다.
수업비를 지불하고 보낸 엄마로부터 볶이지 않으려면 어지간히 노력은 해서가야 할 테니까. 쓰라면 쓰고 고치라면 고칠 수밖에.
마지막 문장, '나는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분은 수정해서 쓰게 했다. 문장의 호응이 맞지 않아서였다. 처음에 쓴 글은 아이가 자존심을 걸고 깨끗이 지워버린다. 지적해주면 자기가 쓴 글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무심코 써놓고 "다 썼어요"하며 내미는 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어보고 뭐 수정할 것 없는지 확인해보라고 한다.
시간마다 똑같이 지적하는데, 시간마다 똑같이 '수정할 것 없다'라고 뻔뻔하게 대답하는 녀석들에겐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살짝 힌트를 준다.
그러면 아이들이 내 입을 막으면서 기가 막히게 고쳐온다. 진작에 고칠 수 있는 걸 왜 안 고쳐오는 것일까, 진짜 궁금하다고 했더니, 진짜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눈에 안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입으로 목소리를 내어 읽어봐야 한다'라고 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내 글이 귀에 들리는 순간, 부끄러움. 그것이 글쓰기의 본성이다, 글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내 바닥과 실수와 어처구니없음까지 글은 진실하게 보이니까. 그래서 내 글임에도 불구하고 차마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내어서 읽어보는 것이, 내가 스스로 검열할 수 있는 첫 단계의 수정이다. 읽고 또 읽고, 두세 번은 읽어야 다듬어야 할 부분이 그나마 어느 정도 다듬어지고, 글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눈만 오면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아이들은 열심히 동그랗게 만들지만 크게 만들면 만들수록 더 울퉁불퉁해집니다. 만화 같은 곳에서도 보면 눈은 아주 하얗게 나오고 아주 쉽게 뭉칩니다. 하지만 실제와는 달라서 아이들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눈을 뭉치면 눈 밑에 있던 흙이 같이 와서 눈이 어두워집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눈은 쉽게 뭉쳐지고 하얗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은 굳이 동심을 지키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제로 없다는 걸 깨달아서 충격받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요.'
한 번에 글을 이 정도로 써내려고 노력한 자세에 good와 best를 적어줬다. 나는 글을 한 번에 써 내려가라고 가르친다. 이 말 붙였다가 저 말 붙였다가 쓰지 말고, 한 번에 써 내려가는 힘을 키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말을 한다는 것과 글을 쓰는 감각을 같이 키우기 위해서이다. 말을 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하고, 그런 능력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글을 한 번에 쭉 써 내려가는 훈련 중인 아이들은 논리와 사고, 표현력, 집중, 인내, 말하는 연습이 함께 된다. 어른도 쉽지 않지만, 학습 중이고 배우는 시기의 학생들은 이런 능력도 감각으로 익히고 활용할 줄 알게 된다, 그러라고 조물주께서는 인간에게 '뇌'를 주셨으니까.
받은 만큼 잘 쓰자, 배우러 왔으니 밥값하고 가라, 열심히 안 하면 선생님 혈압 올라서 수업 오래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면 아이들이 정말 수업 못할까 봐 열심히 '해준다'.
나는 아이들을 만날 때 되든 안되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과 길게 보지 말고 1년만 보자. 1년만 고생하고 논술 수업에서 졸업시켜 줄게.
그래서 우리는 시한부 수업이다. 끝을 알고 꿈을 꾸면서 달려가자.'
'선생님, 이제 우리 6개월 남았어요...'
그래, 6개월 동안 또 잘해보자... 하는 대화 속에서 아이의 성장이 보이는 것은 첫 만남의 글쓰기를 기억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