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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Feb 08. 2020

다시 쓰는 내 삶의 기록부

몇 년 전, 갑자기 궁금해서 나의 생활 통지표를 찾아본 적이 있다. 즘은 가까운 학교 행정실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어렵지 않게 발급받아 볼 수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20분 남짓 기다리면 내가 졸업한 학교의 생활기록부를 팩스로 받아볼 수 있다니...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을 찾습니다. "한 마디만 써주세요"

내가 어릴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내가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했었을지가 한 줄 글에서 어렴풋이 느껴진다.


과거의 선생님들을 떠올려볼 때, 막연 좋은 선생님과 안 좋은 선생님으로 이분법적 사고의 틀로 나눠서 느껴졌던 나는 생활 통지표를 보고 적잖이 놀랬다. 내 기억에 그렇고 그랬던 선생님은 나를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그 내용을 정성스러운 필체로 적어놓으셨고, 표면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선생님은 나를 제대로 파악하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표현하

셨다.

예를 들면, '성실하고 착한 학생임'이 가장 애매표현이다. 뭐가 성실하고 어디가 착한지 전교생 중 몇 %에 이렇게 공통으로 쓰더라도 틀리지않은 표현일 수 있다.

사실, 선생님들도 그 많은 학생들을 파악하고 한 자 한 자 기록하기란 고충이 따랐을 것이다. 슷한 표현들로 채워진 나의 생활기록부를 보면서 나보다는 선생님의 고충도 헤아려보는 참이다.

시간이 흘러, 세월이 흘러서 어른이 된 내가 나에 대해 기록한 선생님의 필체를 뒤늦게야 처음으로 보면서 나는 선생님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기억의 재생산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무섭기만 해서 숨도 못 쉬게 했던 선생님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이며 성실히 노력하는 만큼 향상이 기대된다고 쓰셨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 보긴 보셨던 모양이다.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학생들에게 눈길 하나 안 주시는 것 같던 호랑이 선생님은 아마도 학생 한 명 한 명의 태도와 생활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셨나 보다.

잘 웃으시지만 왠지 마음이 느껴지지 않던 남의 반 선생님 같던 내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순수하고 명랑한 학생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런데 난 그때가 암흑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를 잘 관찰하셨다면 아마도 진작에 불러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셨거나 공부하기에 어려움은 없는지를 알아내려 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시절 얼굴에 그늘이 지고 위축되었던 나의 마음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그래도 교육부 시계는 째깍째깍 잘도 돌아가서 무사히 졸업도 하고 과거의 기억도 희미해져가니..망각의 축복이며 기억력의 한계이다.

수없이 많은 실수와 잘못을 하면서 그것이 실수와 잘못인지 아는  모르는 채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 지금, 과거를 돌아보며 래는 르게 매만지며 살아가고 싶은, 내가 희망하는 나의 생활기록부를 써본다.


특기 : 독서

취미 : 감사

장래희망 : (돈잘벌고 글잘써서 도서관과 복지센터를 짓는) 작가

여기에 하나 더 하고 싶다면

습관 : 행복.


<특기사항>

부지런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성실한 엄마. 예의 바르고 창의적인 엄마.

준법성이 강하고 근면한 엄마.

전 생활 양호하며 양육태도 바람직함.. 모든 생활에 착실히 노력을 다하고 있음. 삶의 태도가 좋고 꾸준히 노력하므로 향상이 기대됨.

착실한 육아 태도로 육아 성적이 양호함.  삶의 태도가 바르고 육아 태도도 양호하나 경제력이 부족함. 부의 축적 및 저축률이 뒤짐.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는 이미 선견지명이 있어 '수포자'의 삶을 살았나 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아주 희망적이고

의 생각은 아인슈타인 느님의 삶의 태도와 같다.


"학교 성적은 걱정하지 마라. 낙제하지 않게만 성적을 유지하렴. 모든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는 없단다."

- <아인슈타인의 유쾌한 편지함> 중에서.



결혼생활을 이렇게 했었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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