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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pr 24. 2019

미국 여행 중에 받았던 특별한 '배려'


몇 년 전, 미국 뉴욕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미국이었고, 처음 밟은 뉴욕 땅에서 내겐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고 볼 '꺼리'들이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황금 같은 여유시간이 생겨서 나는 뉴욕의 명물(?) 빨간색 시티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만히 앉아서 뉴욕의 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특별한 경험이었고 그곳에서 잊지 못할 만남을 갖게 되었을 줄이야! 아마 그래서 뉴욕의 버스가 더 특별하게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나는 그 빨간 버스에서 특별한 '배려'를 받았고, 잊지 못할 감동을 얻었다.


일 관계로 마음이 무거워서 막상 빨간 버스에 올랐지만 얼굴 표정이 무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영어도 할 줄 모르고 떠듬떠듬 베이비 토킹 수준의 내가 혼자서 뉴욕 맨해튼 거리를 다니다 보니 잔뜩 긴장해서는 아마도 이렇게 얼굴에 쓰여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건들지 마세요!'


버스에 오르면서 나는 티켓을 확인하고 자리에 안내하던 30대 전후로 보이는 흑인 남성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떠듬떠듬 영어로..


"제가 이 거리에 있는 00 호텔이 숙소인데, 버스를 타고 이곳에 다시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미국이 처음이라서요..."


그는 흔쾌히 yes! 했고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여행을 즐기라며 웃어주었다.

덕분에 버스 드라이브를 편안히 즐길 수 있었고, 내릴 때에도 그가 먼저 다가와서 다음에 내리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고맙다고 인사한 뒤에 버스에서 내렸다.


그것이 첫째 날 자유여행 때 있었던 일이다.



다음 날...


이번엔 파란 버스를 탔다. 버스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이왕이면 버스를 타고 뉴욕 곳곳을 다녀보고 싶었다.

그날은 기분이 좋았다. 행인에게 길을 묻는 척 영어로 먼저 다가가 보기도 하고, 지나가다 들어가 보고 싶은 가게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넣는 일 마저 재미있게 느끼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버스를 탔는데, 이상하게도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전날 탔던 빨간 버스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그 흑인 남성이었다. 그날은 일을 쉬는 날인지 일상복을 입고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데이트 중이었다.

눈으로 목례를 가볍게 하고 나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내 귀에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하는 말은 그것이 한국말이든, 미국 말이든 귀에 참 잘 들린다는 게 신기하다.

그는 버스기사에게 일부러 다가가서는 조곤 조곤 나에 대해 어떤 말들을 하고 있었다.

주요 내용은 이랬던 것 같다.

"저 여자분이 머무는 숙소가 00 거리에 있는 00 호텔인데 지금 여행 중이고 미국에 처음 왔어요. 무사히 숙소에 찾아갈 수 있도록 내릴 때 안내해주시고
잘 챙겨주세요"


그리고 그는 여자 친구의 허리를 팔로 감으면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이번에도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파란 버스의 여행을 잘 마치고 숙소로 귀가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배려'는 짧은 순간일지라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행동은 짧고 여운은 길다.

그 짧은 배려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생각이 나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배려를 해 준 적이 있었던가.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주었던 배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렇게 몸에 밴, 자연스럽고도 친근한 배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15년 전 한 흑인 남성에게 뉴욕에서 받은 배려로 인해 나는 아직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현재가 궁금하다.

아마도 그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친절한 배려를 베풀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 내맘에say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을 남기고, 그 따뜻한 기억은 쉽게 꺼지지 않는 마음 속의 등불이 된다. 작은 촛불 하나가 세상을 밝히듯 한 사람의 배려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이어질 때 세상을 따뜻하게 채워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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