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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pr 23. 2019

눈 앞에 있는 식사는 100명의 노고 덕분에 있는 것

'마주하고 있는 것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이므로 그것에만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식사는 100명의 손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밥그릇 속의 쌀 한 톨, 접시 위에 놓인 채소 한 줌도 수많은 농부들이 농사짓고 도매상인이 전국 각지로 나르고 소매상인이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비로소 우리의 아침 밥상에 올라온 것입니다.     

그러니 눈 앞에 있는 식사는 100명의 노고 덕분에 먹게 된 것이지요...     

(중략)     

이처럼 100명의 수고 덕분에 나에게 온,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하는 식사를, 다른 일을 '하면서' 먹어도 괜찮을까요?     


 -  <행운은 반드시 아침에 찾아온다>, 마스노 슌묘 중에서.




밥상 하나를 제대로 차리기까지 얼마나 수고로운지, 해보면 안다. 그 노고와 정성과 수고로움을, 때론 귀찮음과 피로함과 분주함을 이겨내면서 차려내는 식탁 위의 만찬.


나도 결혼 전에는 몰랐다. 엄마의 밥상을 눈으로 한번 쓰윽 훑는데 3초면 되었다. 엄마는 손맛이 좋으셔서 어떤 음식을 차려내도 빠른 시간에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먹음직스럽게 차려내셨다.

때론 눈이 호강하고, 입이 호강하고, 배가 호강하고... 엄마 덕분에 호강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내 기억에 언제든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셨다. 엄마는 전라도 태생이시고 음식을 정말 맛있게 하시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나는 다르다. 행동도 늦고 요리도 많이 해보지 않았었고, 자취하면서 먹을만한 몇 가지 정도 할 줄 아는 채로 결혼을 했다. (남편은 라면 하나만 끓일 줄 아는 채로 결혼했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먹고사는 문제로도 충돌이 많았다.

일단 남편은 편식이 심하고, 나는 골고루 잘 먹는다.

그런데 남편은 인스턴트를 싫어하고, 소화시키지 못하고, 먹지 않으며 혐오하기까지 한다. 아이들에게도 일체 먹이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고 전혀 입도 못 대게 먹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번씩은 사주기도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아빠와 똑같은 식성을 가진 채로, 똑같이 음식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 안 먹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편식하지 않으며 인스턴트도 좋아하고, 소화도 잘 시키고, 먹는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자는 주의이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예산으로 음식을 장만하려면 골고루 잘 먹는 나에게 식단을 맞추기보다는, 가리는 것 많은 남편 위주로 식단을 짜게 된다.

그럼 문제가 뭐냐면, 만들 수 없는, 사지 못하는 음식이 의외로 많아진다. 예를 들면

짜장, 어묵, 사 먹는 떡국류, (떡볶이), , , 배달 음식(치킨, 피자), 햄버거, 핫도그, 통조림(참치), 과일통조림(복숭아, 파인애플 류), 요구르트, 라면, 우동 등의 면류, 유부초밥, 단무지, 두부, 젓갈, 포장식품, 반조리식품, 냉동식품(돈가스, 생선가스, 만두류), 햄, 조미김 등등...

특히 아이들 간식류(과자, 사탕, 초콜릿, 색소 첨가된 음료 등등)도 당연히 금지다.

외식 불가. 배달 불가. 협찬 불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저장식품, 가공식품을 거부하며 혐오하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환경호르몬과 방부제, 기타 첨가물 등등을 몹시 경멸한다.

흔히 마트 냉장, 냉동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식품이나 재료 등을 사면 안 되고, 신선한 야채 위주의 식단으로 구성해서 짜거나 맵지 않게, 싱겁게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주부 입장에서는 다섯 식구를 위해 후딱 차려낼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다.

주부 입장에서는 한 끼 정도는 편히 넘어가도 되는 때가 필요할 수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에 한 번쯤 외식을 하고 싶다거나 그럴 때도 있는 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에서는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가족끼리 다 같이 외식한지는 10년이 넘은 것 같다.

남편은 입이 까다롭다. 그래서 시어머니마저도 우리가 한 번씩 본가에 뵈러 가면 아들에게 무슨 반찬을 해줘야 할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라고 하셨다.


물론 건강을 생각해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몸에 좋은 먹거리들을 먹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나라 마트는 다 망하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먹거리들을 계속 먹이는 것도 아니다. 내가 요구하는 건, 어쩌다 한 번씩은 라면도 먹고 햄버거도 먹고 과자도 먹고 하면서 크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


남편이 가끔 주는 빠듯한 생활비에서 (나는 고정적으로 생활비를 받은 적이 없다. 못 받은 적이 오히려 많다. 대체 어떻게 생활을 해왔던가... 그만큼 나도 끊임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나의 노동력으로 가정을 건사해왔던 것이다!) 식단을 구성하고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을 성실하게 해왔다는 점에서 나는 떳떳하다.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내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지인이 컵라면 3개를 주셨다.

학교 마치고 와서 헛헛해하던 어느 날 이른 저녁. 하필 아이들에게 그 컵라면을 먹이고 있었다.(내가 산 것도 아니고, 지인이 주신 것!)

아이들은 컵라면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너무 좋아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닫고는 얼른 3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상기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찰나였다.

째깍째깍.. 째깍... 3분이 흐르고 드디어 뚜껑을 열었다. 새하얀 김이 솔솔 올라가며 주황색 국물이 맛있는 자태를 드러내었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올려 후후 불어서 호로록 먹었다.

라면 몇 가닥에도 아이들의 머리 위로는 행복의 무지개가 피어났다.

한 번, 또 한 번... 그렇게 젓가락질을 세 번째 하려던 무렵!


비상사태. 그 날따라 인기척도 없이 아빠가 집에 일찍 귀가한 것이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이들은 먹지도 못하고 안 먹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순간 아빠의 한 마디!

'다들 갖다 버리세요!'

그 길로 세 남매 일동 기립하여 주방 싱크대에 컵라면 3개를 다 쏟아 버렸다.

겨우 세 젓가락 맛본 컵라면을!

그리고 도끼눈을 뜬 그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 컵라면이 좋으면 한 100개 사다 드릴까요?"

...

('100개 까지야... 한 박스만 사다 주세요')


좀!

한 끼 컵라면 먹이면 어때서!

기어이 그것을 싱크대에 들이붓게 만드는 남편을 보며 나도 입을 닫아버렸다.

에휴... 말해 무엇할까.



이미지 출처 : 픽사 베이

'밥그릇 속의 쌀 한 톨, 접시 위에 놓인 채소 한 줌도 수많은 농부들이 농사짓고 도매상인이 전국 각지로 나르고 소매상인이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비로소 우리의 아침 밥상에 올라온 것입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식을 맛있고 기분 좋게 먹으면 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정 음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선을 긋는 남편으로 인해 우리 가정의 식탁은 다른 가정보다 건강한 밥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늘은 뭘 먹일까, 어떻게 하면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일까...'


쌀 한 톨, 채소 한 줌에도 수많은 농부들의 피와 땀, 헌신과 노고가 담겨있듯이

우리 밥상에 오르는 쌀 한 톨, 채소 한 줌에 담겨있을 아내의 노고를 한 번쯤 생각해주는 남편이면 좋겠다.

기분에 따라 고마워하는 그의 입바른 소리의 인사말보다는

표정에서 배려와 감사가 느껴지고, 맛있게 먹는 소리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남편은 밥을 먹을 때 참 말이 없다... (연애 때는 그렇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

어쩌면 내가 그 입을 닫게 만들었을까?

나도 밥을 먹을 때 그와는 참 말이 없다...(연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도 내 입을 닫게 만들었다.

우리는 밥 먹으면서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많지 않다. 말하다 보면 싸울 것 같아서. 말하다 보면 꼭 기분이 상하거나 밥맛 떨어지는 일이 생겨서... 말하지 말고 듣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겠다고 판단하게 된 이후로, 나는 그와의 겸상이 불편하고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식구 [食口]란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나의 식구가 아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한 식구가 되면 좋겠다.

나는 그의 식구, 그는 나의 식구.

그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식구라도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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