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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이의 방을 치워주지 않기로 했다.

청소 독립!

by 아인잠

큰아이 방을 한 번씩 정리할 때는 책상 위에 있는 종이쪽지들을 마구 쓸어버리면 안 된다. 애써 그려놓은 그림들, 반짝 생각나는 이미지들을 그 자리에서 척척 그려놓기 때문에, 혹여나 내 실수로 버려지는 작품들이 있으면 난감하고 미안한 상황이 더러 생기기 때문이다.

어제도 청소하는데 무심코 버릴 뻔한 것들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두고, 버려도 되는지 물어보는 작업을 거쳤다. 앞으로는 딸아이가 알아서 버리고 추릴 것은 추리도록 약속했다.

너무나 많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모으는 양도 상당하지만, 내 눈에는 작품 같아도, 아이 눈에는 그냥 낙서 내지는 장난이니 버려도 된다는 것이 많아서 나는 사진으로 찍어두고 아이의 처분에 맡기거나, 몰래 모아두기도 한다.

다음 회 내용이 궁금해지는 낙서

손 감각이 얼마나 좋은지, 앉은자리에서 가위로 아기천사를 뚝딱 오려준다.

크기도 작은데, 나름 곡선이 살아있는 통통한 아기천사.

나는 아이가 두 돌 지난 즈음부터 어른들이 쓰는 큰 가위를 쥐고 오리게 했다. 첫째, 둘째, 셋째 모두 큰 가위로 오리게 했다.

요즘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큰 가위를 붙잡고 오리기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수업 오는 아이들에게도 큰 가위를 잡고 오리라고 한다. 다칠까 봐 안전상의 이유로 아기용 가위부터 쥐어주는 엄마들도 많지만, 내 경험상 가위로 인해 아이가 다친 경우는 없었다. 아이들이 주의하라는 말을 안 해도 어련히 주의해야 할 것 같은 가위를 들고 찬찬히 오렸다.

가위가 작으면 손가락이 불편하거나 아프고, 종이를 자를 때 힘을 많이 줘야 하기 때문에 가위질이 영 즐겁지 않다. 큰 가위를 들고 척척 오리면 오리고 싶은 것을 큰 힘을 주지 않고도 부드럽게 오릴 수 있고, 주의집중력이 더 생긴다고 믿는다. 오리기가 안되면 붙이기도 안된다. 가위질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풀칠도 잘 못한다. 딱풀을 요령껏 어떻게 발라야 하는지도 가늠이 잘 안된다, 확 뭉게 버리거나 여기저기 뭉치게 발라놓고 대충 붙인다. 오리기 - 풀칠하기 - 붙이기 작업까지가 한 세트가 되어서 원활한 작업이 되면 자기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즐거워진다.

가위질, 풀칠이 안 되는 경우, 대개는 연필 잡는 것도 어설프다. 손가락 손아귀에 힘이 없어서 글씨체도 연하다, 글 쓰다 보면 손이 아프다는 아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6년을 그렇게 손 아파 글쓰기 싫고 책 싫어 글쓰기 싫고, 생각하고 글쓰기 싫어서 책을 싫어하게도 된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아이들 아기 때부터 무조건 많이 오리고 찢고 그리고 붙이게 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영 귀찮고 정신 사납고 즐겁지 않은 것은 엄마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진상과 별짓이 마뜩잖고 안 하면 좋겠는 마음은 엄마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엄마가 싫어하는 것은 아이가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에게 밀가루 반죽을 주면서 놀자고 하면 그중에 한 명은 꼭 기겁을 하면서 만지기 싫다고 한다. 손에 묻고 옷에 묻으니 싫다는 것이다. 대개는 엄마가 깔끔한 경우이다.

어렸을 때 큰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색종이 접 기하며 한창 놀아주니 아이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는 내가 색종이 한 번만 더 갖고 오면 불 질러 버릴 거'라고 했다며 집에서는 색종이 접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꼭 그런 경우, 몇 년 지나면 글쓰기가 안되어서 학원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많다. 악순환이 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의욕 없이, 호기심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는 것도 없고 뭔가를 물어보면 '몰라요, 싫어요, 별로요'가 다 인 아이들과의 수업은 그래서 어렵다.

그런 경우 대개는 또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견디는 힘도 부족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은 자기 조절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이들의 어릴 때 놀이에서 비롯되는 느낌이다. 그것은 또한 엄마와의 관계, 육아방법과도 연결되어 있다.


"평소 자기 조절 훈련이 잘되어 있는 사람은 의지력, 집중력, 판단력이 건재하기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가 와도 오히려 거기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학습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자기 억제력이 취약한 사람은 스트레스가 생기면 즉각 편도체의 민감 반응이 작동해 논리적, 합리적 사고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동적, 폭발적 행동으로 발전한다."

-<부모라면 자기 조절력부터>, 이시형


자기조절훈련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충분히 키울수 있다. 커서 사회활동하면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어린시절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면서 마음대로 안되는 것도 경험하고 도전을 무릅쓰고 끝까지 해보면서 수많은 실패와 착오, 눈물, 성공 사이에 키워지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스마트폰까지 하면 상황은 더 악순환이 된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당장에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당장 문제가 되는 일은 없고 어른이 보기에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같아 보이고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저 착하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눈빛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의욕이 없고, 힘이 없고, 호기심이 없고, 거절도 안 하고 기쁠 때 크게 기쁘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면, 더 들여다보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아이의 기운을 살려주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 키(key)는 엄마가 쥐고 있다.

아빠, 할머니, 이모, 삼촌, 고모가 아무리 살뜰히 잘 챙겨도 나는 육아는 엄마 몫이라 생각한다.

10달을 배속에서 키워 낳고, 살을 비비고 스치며 지내며 아이의 눈빛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 엄마.

그래서 아이의 글쓰기는 아이의 성장과정과도 연결이 되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가 단기간에 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수업시간에 보면 오리기, 접기, 붙이기, 만들기 작업에 도무지 관심과 흥미도 없고, 의욕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안타깝다,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저 스마트폰을 1시간 더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을 보면, 어떻게 도와줘야 스마트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되어서 어른 놀이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을 엄마도 아닌 사람이 변화시키는 일이란, 마치 엉금엉금 기어서 밀림 숲을 지나서가자는 노래만큼 비현실적 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는 잘 놀고, 오리고 붙이고 말하고 쓰는 표현만 잘해도 학교생활이 훨씬 재미나고 자신감이 붙는다. 그래서 가볍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들의 미래는 엄마의 현재가 붙잡고 있다.

제발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말고, 아이와 타협하지 말고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게 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우선 내 아이만큼은 스마트폰 안이 아니라 밖에서 자유롭게 놀면서 자라게 해주고 싶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뚝딱 그림을 그려내는 큰 아이의 표현은 이제 내가 상상할 수가 없다.

오직 아이의 손 끝에서 표현되는 그림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나 느낌,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심상이 떠오를 때, 나는 아이를 부여잡고 엄마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럼 아이가 엄마를 달래며 말해준다.

"엄마,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럼 갑자기 떠오르는 것들이 있을 수 있어."


아이 주변에는 갑자기 떠오르면 언제든 표현할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노트, 메모지, 사인펜, 색연필이 종류별로 있다.


갑자기...

떠오르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를 네버엔딩 스토리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겨난다.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by 아인잠's girl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껏 날기를...

너의 꿈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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