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장보고 오는 길에 빵이 맛있어 보여서 평소에 잘 사지 않던 종류의 빵을 사와서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접시에 내줬다. 둘째, 셋째는 맛있게 먹는데 첫째가 미묘한(나만 느끼는, 딸이 짓궂은 장난을 할 때 짓는 표정)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어디서 샀어?"
나는 마트에서 오는 길에 근처 빵집에서 샀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딸이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엄마는 일반인보다 뭔가 다른 부분이 있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말이야, 이 책에서는 이렇게 나와있어.'하며 읽고 있는 책의 본문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남자에게 "이 스테이크 어디서 샀어요?"하고 물어보면 "마트에서요"라고 대답하는데, 같은 질문을 여자에게 하면 "왜요? 스테이크가 뭐 이상해요?"라고 대답한다고.
그저 순수한 질문이었지만, 여자는 아마도 자신의 장보기 능력이나 요리 능력에 대한 개인적 공격으로 해석한 것이리라. 전통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장보기나 음식준비는 여성들의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마트에서 오는 길에 근처 빵집에서 샀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빵이 맛이 없나, 왜 물어보는거지?' 생각이 들면서 살짝 기분도 나빠질려고 하는 것이다. 추운 길을 돌아서 바쁜 와중에 일부러 사다줬더니 뭐가 맘에 안드는건가 생각했다. 내 미간이 살짝 찌뿌려졌던 것은 내 마음이 먼저 느꼈다.
남편과 한 집에서 살 때 반찬을 해놓으면, (너무 맛있을때) '이거 어디서 샀어?"라고 물어보는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럼 나는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돈벌어다 반찬해줬더니 반찬투정하는건지, 따지는건지 기분이 나빠지면서, '사기는, 내가 직접 했지'라고 고깝게 말하곤 했었다. 어떤 말이든 나를 공격하는 말로 들렸을 때다.
나는 맘만 먹으면 1시간안에 12첩 반상도 차려낼 수 있다. 그렇게 하지않은 건 결혼생활에서 변화된 것이지 나의 음식솜씨야 주변사람들이 더 잘안다. (말하기 민망하긴 하지만.)
암튼, 기분이 나쁠랑 말랑 하는 사이에 딸이 책의 본문을 읽어주자 이해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 면이 있다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저 순수한 질문으로 '어디서 샀어?'하고 물어볼 수 있는데 말이다. 빵이 맛이 있어서 혹은 못보던 빵이라,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는 질문에 혼자서 발끈할 뻔 했던 것을 생각하며, 딸에게 나의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오늘도 밖에서 상담과 수업을 하고 들어오면서, 집에 하루종일 아이들끼리 있으면서 뭐라도 챙겨먹었을까 싶어서 오는 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크림빵을 사왔다. 그리고 몇일 전 아이들이 짜장면이 먹고싶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야채와 짜장을 사와서 집에 오자마자 짜장밥으로 저녁을 만들었다.
식사를 차려주니, 또 큰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거 다 어디서 샀어요?"
'엄마가 했지?'하고 물었더니 아이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안속네, 책에서 봤던거 생각나서 다시 물어본건데?"
큰아이가 장난기도 많고 이제 중 1이라고 내가 보는 책들을 제법 같이 읽는다.
300~400 페이지 분량의 글책을 다 읽어내는 것도 기특하지만, 책에서 본 기가 막힌 내용들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나보다 빠를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좋은 독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쁘다.
책의 내용을 더 살펴보면 이런 설명이 있다.
"개인화란 간단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질문, 행동을 당신 자신의 가치나 외모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잘못된 사고들과 마찬가지로 개인화 역시 균형잡히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쓰이면 문제될 것 없이 오히려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우리에게 문제와 감정적 고통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