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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와 나 사이 '종이로 노는 법'

경험을 공유하기

by 아인잠
"엄마 옆에서 할래, 엄마 옆에는 사랑이 주렁주렁 맺혀있네?"


쫑알쫑알 조잘조잘 막내의 목소리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나를 사랑해주어서 고마우나 뭘 하든 내 옆에 있으려는 영혼 담긴 찬사에 나는 매일 기운을 내어보는 44살의 바쁜 엄마이다.

첫째 아이의 학교에 가면 못 느끼는데, 막내 유치원에 가면 또래 엄마에 비해 내가 나이가 많다. 나는 나이 많은 엄마.

그러나 계속 건재하여, 적어도 막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막내보다야 최신식인 감각을 유지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엄마이고 싶어서, 나는 공부하는 엄마이다. 노력하는 엄마이다.

막내가 그림을 그릴 때 옆에 앉아서 나도 같이 그림을 연습한다. 첫째 키우고 둘째 그림은 첫째가 맡으면서, 그림에 손 놓은 지 꽤 오랜 시간이 된 것 같다. 첫째 키울 때보다 바로바로 생각이 나지 않고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래도 일곱 살 아이 눈에는 멋진 그림을 선물하고 싶어서...

나름 막내의 초상화 by 아인잠

그림을 그릴 때 딱 나의 모습은 첫째 아이가 그려준 그림 속에 있다. 참으로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엄마 액체설, 이것이 원조 생물액체 by 아인잠's girl.
사실, 놀아주는 게 쉽지는 않다.



이 세상에는 글이 있기 전에 그림이 있었다.

그림이 변하여 상형문자가 되고 상형문자가 지금의 각 나라 문자로 발전하기 까지, 나는 참으로 다행스럽기는, 한국에 태어나 한글로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마음은 나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나마' 몸이 글과 친하다.

그래서 글로 놀아주는것은 '그나마' 쉬운데,

문제는 아이들은 몸(신체)와 그림으로 놀아주면서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안되는 몸과 그림으로.

그런면에서!

나의 노력에 대해 생각해볼 때 스스로 떠올려보아도 가상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종이 접기의 저주(?).

첫째가 어렸을 때 색종이로 뭔가를 하나 접어주면, 아이가 감격하면서 꼭 이렇게 말했다.


"엄마 너무 좋아요, 엄마 이거 너무 맘에 들어요, 색깔별로 10개씩 더 접어주면 안 돼요? 네에?"


그냥 하나만 해라! 콱~마 C!

아이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면 내 신상은 편해 보일지 모르나,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색깔별로 10개씩 접어줬을 때 아이가 얼마나 재미있게 놀고 행복해하는지, 다음 작품이 어떻게 파생되고 아이가 어떤 인내로 배워가는지를 겪어본 나로서는, 아이가 원할 때 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거 생각했다.

그래서 책상 옆에 좋은 책의 글귀들을 붙여놓고 마음으로 외워가면서, 손으로는 종이를 접으며 지문이 닳도록 접고 또 접었다.


종이 접기에 입문할 때 흔히 하는 생각이, 종이접기는 아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초기에는 엄마(아빠)가 신나게 접어줘야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접는 방법과 태도와 요령을 배운다. 눈썰미를 키우고, 호기심을 키우고, 종이가 접어져 가면서 모양이 만들어질 때 얼마나 놀라워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종이 접기의 위력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 같은 일이다.

(어렸을때 종이접기를 안해본 아이들은 크면서도 종이접기의 즐거움을 모르고 정작 해보게 하고 싶은 때가 오더라도 아이는 거부한다. 종이접기 자체를 귀찮아하고 힘들어하고 하고싶어하는 마음도 없다. 이것은 공부나 책읽기, 글쓰기 등의 활동에서도 집중력, 인내심, 손의 힘이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 든다.)

색깔별로 10개씩, 하루에 몇 번씩 종류별로 매일 한달간 접으면 손가락 지문이 닳는다.
색종이 100개를 접어서 베란다 창문에 갖다붙인 날
아이들만 기뻤다. 베란다에 색종이가 주렁주렁
색종이에 아이들의 희망과 사랑이 담긴다.
꽃과 새라고 우기는 엄마의 어거지도 담긴다.
병원에 입원했을때도 색종이를 가져가서 하루종일 놀았다.
놀이의 방법은 아이가 정한다.

살다가 보니...

종이접기 신공, 꽃발명 가능
메리 색종이마스
물고기 발명, 토끼 발명

물론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종이접기 발명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와 내가 기억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함께 종이를 접으면서 때론 잘못 접은 방법이 다른 모양이 되기도 하고, 그때 우리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희열을 느끼고 함께 웃었던 순간순간이 이어져 지금에 왔다. 그것은 분명 우리만의 특별함이고, 이런저런 추억들이 있기에 나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단계별로 느꼈던 아이의 성장과 호기심, 노력, 아이다움, 근성, 반짝임 들을 기억하고, 포기, 눈물, 후회, 다시 도전, 창조, 기쁨, 적용의 순간들을 함께 했기에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자세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지, 학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낼지 조금은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를 믿는다. 그리 아니할지라도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믿어주는 존재일진대, 함께 한 하나하나의 기억들로 채워진 관계라면 그 관계는 더 곤고하고 튼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아이의 활동에 함께 하고자 했다.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는 일이다. 공유할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공유함'이란, 나중에 관계를 곤고히 하고 어려움을 돌파해나갈 수 있게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처음 핸드폰이 보급되었을 때, 가장 이슈였던 것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이었다.

아빠가 처음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식으로도 말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아빠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바로 답을 하시던 아빠가 도통 연락이 없어 걱정되었다.

더 참지 못하고 급하게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빤 마침 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던지 삑삑, 삑 핸드폰 버튼 누르는 소리만 계속해서 들렸다.

몇 번이나 다시 전화를 되걸고 나서야 드디어 아빠와 통화가 되었다. 혹시 나한테 문자를 보내는 중이었냐고 여쭸더니 아빠가 말했다.


'ㅏ를 ㅐ로 바꾸는 법을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는 것이었다. 무슨 문자를 보내려고 했냐는 말에 아빠가 웃으며 말하셨다.


"애기야 놀자!"


같이 놀아야할때 안놀아주면 삐뚤어질테다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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