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 동네에 '제대로' 된 첫눈이 내려있었다. 눈이 온건가 싶게 살짝 나무 위에 내려앉은 서리는 본 적 있었으나 아이들이 눈 사람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왔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눈이 엄청 내린 건 또 아니었으나, 아이들은 아쉬운 데로 이 겨울에 눈사람 만드는 추억은 하나씩 남기면서, 추운 줄도 모르고 겨울을 느껴보았다.
손이 새빨갛게 되도록 추운지 모르는 아이들은 집에 들어갈 생각도 안 하고 신이 나서 논다. 그런 것 보면 신기하다. 나는 어렸을 때에도 밖에 나가 눈사람 만드는 것보다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엄마가 삶아준 김이 폴폴 나는 고구마 먹는 것이 더 좋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것은 사람마다 다른 추억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눈이 올 때 눈사람을 추억하는 사람은 눈 올 때 눈사람을 많이 만들어본 사람이고, 나처럼 눈 올 때 고구마를 추억하는 사람은 눈 올 때 고구마를 많이 먹어본 사람일 거다.
때로는 못해본 한이 맺혀서 안 해본 일을 추억할 수도 있겠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사계절 바다를 떠올리는 우리 아이들은 바다에 원 없이 못 가본 게 한이 되어서 일 년 열두 달 바다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얼른 엄마가 건강도 되찾고 돈도 찾아서 물속에서 질리도록 놀게 해주고 싶다.
부숴뜨리지 마세요. 힘들게 만들었어요
추위에 얼굴이 빨개진 아이들에게 '추우니 어서 집에 가자'라고 하면 말을 안 들어도, 1초 만에 따라나서게 하는 방법이 있다.
"붕어빵 사줄게, 가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사람을 버리고 붕어빵을 향해 달려간다. 붕어빵 이야말로 눈사람만큼이나 겨울아니면 만나보기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 다른 동네는 어떤 지 몰라도 붕어빵이야말로 겨울에만 먹을 수 있고, 그나마 동네에 파는 곳도 몇 군데 안 되는 진귀한 간식이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을지, 꼬리쪽부터 먹을지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고, 머리부터 먹는 사람은 머리부터, 꼬리부터 먹는 사람은 꼬리부터 먹는 경우도 많이 봤다. 나는 꼬리부터 먹는다. 웬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눈코입이 몰려있는 머리부터 냉큼 집어삼키는 것은 붕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생선구이는 몸통부터 먹더라도, 붕어빵은 꼬리부터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먹는다.
나 어릴 때는 요즘같지않게 곳곳에 붕어빵 파는 곳이 많았다. 시장 어귀마다 있었고 동네 골목 어디쯤에도 항상 있었다. 꼭 겨울이 아니어도 더운 여름이 아니면 붕어빵 마차가 꼭 나타났다. 나는 꼭 가던 곳만 갔다. 거기엔 항상 허수아비처럼 일 년 열두 달 같은 표정으로 웃고 계시는 붕어빵 아저씨가 있었다.
말을 못 하시는 분이었는데 눈에, 얼굴에, 입에, 항상 웃음이 가득했다. 사람을 보면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손님들을 반기셨다. 붕어빵도 좋았지만, 거기에 가면 꼭 웃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붕어빵을 먹으러 갔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할수록 힘들 때마다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오게 되면서 그 뒤로는 그 아저씨가 어떻게 되셨는지 소식은 끊겼지만, 아마 지금쯤 편안히 하늘 어디에 계시지 않을까 싶다. 말씀은 못하셨지만 항상 나에게 '맛있게 먹어'라고 음률로 '으.. 으..'하고 표현하시는 음성이 노랫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