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동화를 썼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쓴 동화를 읽으며 한글을 배우고 자라왔다. 막내가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아! 엄마가 쓴 동화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 하면서 엄마의 동화책을 찾으러 책장으로 갔다.
모르는 글자를 엄마가 쓴 동화책에서 찾아 배우는 아이에게는 남다른 감정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쓴 동화책이라는 그 특별함은 책에 대해서, 글에 대해서, 글자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하고, 그것이 글을 대할 때에 즐거움으로 작용했다. 역시 엄마의 동화책이 제일 재미있다며, 손안에 든 책에 재미를 느끼는 감정은 계속해서 다른 동화책들을 읽어나가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세 아이 모두 스스로 글자를 익히고 (물론 보이지 않게 책을 많이 읽어준 엄마의 노력도 있었음은 당연하다.) 책을 즐겨 읽으며 책과 가깝게 자라나고 있다.
어느 경우를 보아도, 책을 많이 읽어주는 엄마 아래 자라난 아이들의 경우 말하고 글 쓰고 생각하는 것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최첨단 뇌과학 기기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욕을 하거나 '죽인다' '때린다' 등의 거친 말을 쓰는 순간 공격 중추인 편도체가 즉각 흥분해 뇌가 공격 모드로 바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격 호르몬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한다.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아이들의 말씨는 대부분 거칠고 험하다. 그리고 그 거친 말씨가 더욱 아이를 공격적으로 만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시형, <부모라면 자기 조절력부터> 참조)
말을 거칠게 하는 아이는 행동도 거칠기 쉽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부딪힘을 경험한다. 아이들 간의 사회성에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 아이들의 말씨와 행동이 가정에서부터 비롯됨을 볼 때 양육자의 태도와 관련이 깊다.
엄마가 동화작가인 경우, 생활 속에서 보통은 좋은 말, 고운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욕을 해대고 거친 언행을 보이면서 동화를 쓰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기술도 상당히 놀랍다.)
좋은 말, 고운 말을 쓰면 아이의 마음이 차분해지고 아름다운 말을 쓰면 아이 마음도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자연이나 일상 속에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감성적인 표현을 할 때,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자극을 준다. 그런 자극을 언어로 끄집어내어 표현해주는 (동화작가인) 엄마의 경우,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일이 생활 속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이 순간 쾌적 호르몬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감성적인 우뇌가 열리고 영감이 떠오른다.
예술성, 창조성도 여기서 비롯된다. 아이들에게는 고운 심성이 생긴다.
<부모라면 자기 조절력부터>, 245p
동화작가가 되기 이전에도 나는 집에서나 산책을 할 때나 작은 어떤 일에서도 동화적인 표현으로 말을 했던 엄마이다. 그 경험이 동화에 담기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모든 책은 누군가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너의 경험이 너의 책이 된다고.
아이들이 글자를 곧잘 읽는다고 할 때 엄마들이 방심하여 잘하는 일이 '너 혼자 읽어봐, 글 읽을 줄 알잖아' 하면서 책을 혼자 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나 내버려 두는 것과 지켜보는 것, 기회를 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방임과 돌봄이 명확히 다르듯이.
6-7살 아이들 중 글을 안다고 할 때 어떻게 읽는지 지켜보면 안다. 한글을 익혔다고 마음 놓을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한창 많이 읽어줘야 할 시기이다.
한글을 한창 익히고 알아가는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모르는 책에서 모르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흔들리는 눈빛이 호기심을 향하는지 힘들게 굳어지는지 생소한 단어들을 갑자기 읽어 볼 때 아이들의 글 읽기 수준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러는 사이 봄이 할멈이 차츰 살림을 도맡게 되었어.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집안 여자들을 데리고, 고기 삶으랴 전 부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
- <부엌 할머니>, 이규희 글, 윤정주 그림, 보림.
아이가 글을 읽을 때, 두 종류로 나뉜다.
글자를 읽는 경우
"그.러는사이.봄이.할.멈이.차츰.살.림을.도.맡게되.었어.명.절이.나.제.삿.날이.면.집.안여자.들을데.리고.고.기.삶.으랴전.부치랴.눈코.뜰새.없이바.빴.지" 하는 식으로 읽는다. 그나마 제대로 한글을 잘 알 경우에 읽을 수 있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면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책 읽기를 거부하고 덮고 일어나 가버릴 수도 있다.
의미를 읽는 경우.
"그러는.사이,봄이 할멈이. 차츰 살림을 도맡게 되었어. 명절이나 제삿날이면.집안 여자들을 데리고.고기 삶으랴 전부치랴.눈코뜰새없이 바빴지."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초등 저학년이 되어서도) 책을 많이 읽어준 경우, 아이들은 문맥을 알고 의미를 읽는다. 이해가 어떨 때 더 잘되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터.
나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읽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책도 읽어보게 한다.
둘째가 6살이었을때 한글을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서 한번 읽어보게 한 적이 있었다. 떠듬떠듬 읽지만 아이의 한글 교육에 대해서 내가 마음을 놓았던 이유는 아이가 책 읽는 방법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에너지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모든 일에 abcde 방식을 적용하라. 이 방식을 사용하면서 특정한 일을 하거나 하지 않을때 발생할 결과나 영향을 숙고하는 습관을 익혀라. 중대한 결과가 예상된다면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다."
<백만불짜리 습관> 중에서.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6살 아이에게 어려운 단어가 나오지만, 떠듬떠듬 읽더라도 의미가 이해되도록 띄어쓰기와 문맥에 맞혀 읽는 모습을 보았다.
띄어쓰기만 해도 의미가 전달되지만, 띄어쓰기 뿐만 아니라 '이어서 읽기' 부분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에너지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일의 우선순위를정하려면/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모든 일에 / abcde 방식을 / 적용하라' 이런 식으로 이어읽기도 유념한다. 초등학교 학생 중에도 이어서 읽기 부분이 잘 되지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책을 많이 듣고, 읽어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띄어읽기, 이어읽기가 가능하다.
뇌가 의미단위로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아이도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기 싫은 이유는 글자를 읽기 때문이고 글자를 읽어봤자 의미도 모르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의미를 읽지 못하고 글자를 읽는다면 엄마는 아이를 붙잡고 최대한 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 엄마의 오디오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는 머릿속으로 비디오로 상상하고 글자와 의미를 이해한다. 그래서 책이 재미있고 읽어지고, 혼자 있을 때에도 상상력과 표현력, 창의력이 길러진다.
그럴 때 혼자 책을 읽도록 내버려 두기도 하고, 칭찬을 해줘 가면서 계속 책을 읽도록 지도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읽기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읽기 독립이 이루어지기 전에 아이가 혼자서 책을 잘 본다고 마음을 놔버리면, 아이는 반드시 엄마에 의해 독서논술 학원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미 이해력, 독해력, 논리력, 사고력, 표현력, 창의력, 집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찾아오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의 경우 단기간에 주 1.2회 수업으로 독서력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능한 집에서 꾸준히 책을 읽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게다가 요즘 코로나 시대에 학원가기도 어려운 때는 더더욱 집안에서 책을 많이 읽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동화작가'라는 직업은 부러움을 받는다.
"와, 엄마가 동화작가야?"하고 눈을 반짝이면서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아이가 으쓱할 수 있는 이유는 '엄마가 동화작가'라서.
동화책 시대를 살아가는 유,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짓는 엄마의 직업은 멋지게 다가오고 근사해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엄마의 직업에 대해 친구들 앞에서 소개할 일들이 생기기도 하면, 아이는 학교생활 중에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나는 모든 엄마들이 동화작가가 되면 좋겠다.
재미있고 편안하게 말과 글을 가르치고 책 읽기를 알려주고 전수해주는 엄마.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많이 읽어주는 엄마로도 충분하다.적어도 아이에게만은 모든 엄마들은 훌륭한 작가이다.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짧은 동화를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엄마, 재미있는 엄마를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리 없다.
*모든 아이에게 테스트부터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내가 만난 아이 중에는 책만 읽으면 불안해져서 손톱을 다 물어뜯는 경우가 있었다. 손에 피가 나더라도, 남아있는 손톱을 어떻게든 뜯으려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한동안 안타까웠다. 엄마의 조바심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가만히 아이의 성장을 함께하면서 기다리면 아이는 어느 순간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보여주는 때가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