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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25. 2020

아이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는 법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아이의 행동이 아침부터 굼떴다.

얼른 일어나 씻고 아침 먹고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여유 있게 나갔으면 했는데

나도 늦게 깨웠지만 후다닥 일어나서 밥도 안 먹고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쿵했다. 아이가 닫고 나간 현관이 쿵 하고 닫혔을 때, 나는 문 뒤에 서서 잠시 닫힌 문의 진동을 느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기기의 안내 음성을 들으면서, 거실 창가로 갔다.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통학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거실 책상 앞에 앉았다.

아침부터 숨 가쁘게 시작된 하루지만, 감사해야지

짜증내고 나간 아이는, 학교 갔다 오면 얘기 좀 해봐야지 얼핏 생각하면서...


부랴부랴 나갔는데, 아이가 걸어가는 하늘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산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냥 뛰쳐나가는 바람에 나도 정신없이 아이를 보냈고

하교할 때쯤 우산이 필요하면 전화하겠지 싶어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오는 길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우산 갖고 갈까?' 문자로 말이라도 해봤다. (안 갈 생각도 했다. 비 오면 맞고 와야 다음에 챙기겠지 하는 마음에)

아이는 연락도 없이, 비를 맞고 왔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그날은 미술학원에 가는 날이었고,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가방만 내려놓고 다시 나가야 했다.

그런데 앉아서 요플레를 먹고 있었다.

요플레 먹는데 넉넉히 5분이면 되겠지 싶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요플레 하나 먹는데 10분이 넘어갈 줄을 모르고...

나는 5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학원에 이미 늦었으며 지금 얼른 튀어나가야 그나마 '덜' 늦을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말이 없었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눈치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씩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나가야 할 것 같은데?

5분 지났어, 지금 시계 보고 언제 갈지 결정해봐

10분 넘었어,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내버려 뒀더니 엉덩이가 무거웠다.

그래서 ! 소리를 지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솔직히 조금 언성을 높였다

! 은 안 했고!

한 옥타브 올려서

'지금 나가야 하지 않아? 오늘 학원 안 간다고 할까!!!!'

그랬더니 아이가 튀어나갔다.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현관문이 다시 쿵 닫히고, 나는 또 문 뒤에 남겨져서 문의 진동을 느끼고

거실 창가로 가서 아이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우산 하나 들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녁에 오면 얘기를 해봐야지 싶었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아침부터, 오후에도, 나와 언짢았던 아이는 기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내가 차려준 밥을 조용히 먹었다.


나는 이어서 아이들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긴 얘기는 못하고

천천히 편하게 먹으라고 하며 수업 준비를 간략히 한 뒤

수업 온 아이들을 맞이했다.


수업을 마치니 밤이 되었다.

아이가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의 방에 불은 꺼질 줄을 몰랐고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아마도 아이는 새벽녘까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다음날, 아이가 학교에 갔다.

이번엔 조금은 일찍 일어나서 아침도 먹고,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내게 도착한 사진...


 


하루 종일 생각하고, 이미지를 떠올리고, 생각한 대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번의 색을 바꿔봤을 아이의 터치를 느끼면서.

아이가 생각하고, 머무르고 있는 중에

내가 방해하고 다그치지 않도록,

정말 아이가 '내가 알아서 하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서 해나가는 모습을 기꺼이 천천히 바라봐주고 지켜줄 수 있는 엄마가 되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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