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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pr 25. 2019

결혼 후 아내에게 발생하는 병원비는 아내 부담?

예전에 함께 일했던 남자 동료가 있었다. 오며 가며 마주치면 주로 일 얘기를 나누었는데 꽤 코드가 잘 맞고 한마디 말에도 이심전심 알아지는 것들이 많았다.

그날도 나는 바람 쐴 겸 사무실을 나와서 밖으로 잠시 나가는 길에 x군과 마주쳤다. 

피차 안색이 몹시 피곤해 보이길래 “피곤할 때 어떻게 버티세요?"라고 했더니 그의 답이 걸작이었다. 

"빨리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그것도 결혼 첫날밤에 죽을 것 같아요" 하는 것이었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결혼 첫날밤에 죽지 않을 만큼만' 일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결혼 첫날밤에 죽을 만큼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결혼’이라는 말에는 희망과 미래, 꿈과 행복이 담겨있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희망의 단어였다. 

'나도 때가 되면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정된 미래의 행복! 

나와 비슷한 반쪽을 만나서, 행복한 온 쪽을 이루어가는 결혼 생활! 그런 것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비록 지금은 '반쪽'을 만나지 못해서, '반쪽'을 알아보지 못해서 유보되었지만, 분명히 나보다 나은 나의 '반쪽'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거라는 희망? 비록 몇 등에 당첨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게도 올 행복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서 힘든 시기도 그럭저럭 그때에 주어진 내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다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인연이 바로 지금의 내 남편이고, 나는 내 남편이 나의 확실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인연은 하늘이 내린 인연이 있고, 사람이 만든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내 인연은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틀림없이 믿었기에 그때에는 행복했는데, 살면서 겪어보니 이 인연은 내가 만든 잘못된 인연이 아니었나 하는 후회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요즘은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고생길’에 들어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나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도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결혼은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래 시제의 단어’이고, 결혼한 사람에게는 ‘과거 시제의 단어’이다.

‘미래 시제의 단어’ 일 때 결혼은 지금까지 일하느라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까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나의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농축된 단어가 아닐까. 


‘과거 시제의 단어’로서 결혼은 그때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누구와 결혼했을까.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당면한 문제들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결혼은 ‘현재 시제의 단어’이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는 현재 진행형으로 인생의 희로애락 애오욕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관계다. 그렇기에 때론 친구로, 때론 전우애로 그 험난한 파고를 넘으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혼을 한 이상, 어쩔 수 없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결혼이란 제도로 묶여있다. 

나는 결혼을 통해서 남편과 세 남매를 얻었지만, 그들로 인해서 나의 자유와 꿈과 목표와 인간관계를 유보하면서 지내오기도 했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밖에 답할 수 없다.

나라고 그렇게 살아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기로에서, 나의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현재의 시간에, 나에 대해 집중하고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비로소 어느 날엔 결혼을 통해 성숙해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     

그것이 첫날밤에 콱 죽어버릴 것 같은 피곤을 무릅쓰고 일해온 나의 과거에 대한 보상이며,

누리고 싶은 자유를 유보하며 찬찬히 준비해 가고 있는 현재의 나에 대한 상급이라 생각한다.

     


결혼 후 오랜 시간 동안 치과진료를 받아보지 않고 살아오다 보니, 한꺼번에 치료해야 할 치아에 대해 치료비가 꽤 많이 나왔다. 

수백만 원이 나왔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지원해줄 수 없으며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결국 내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서 쓰고도 모자란 금액이 있어 다시 얘기했더니 빌려주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시간이 다시 후회스러운 때가 왔다.

내가 그 정도 보상도 받지 못할 만큼 해온 일이 아닐진대, 어째서 남편은 아내의 치과 진료비를 아내의 책임으로 넘기는 것인가.     

서럽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어지는 순간이 왔다.

내가 이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고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후회되려 한다.

그리고 그에게 아픈 일이 닥치면, 내가 그를 돌볼 수 있을까.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결국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와... 이 사람은 내가 아프면 버릴 사람이네...'

그게 가장 배신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될 때나 못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함께 하겠노라는 약속은 이럴 때 지키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인가?



이 고비를 또 어떻게든 넘기고 나는 나의 길을 가야지.

자꾸만 이를 악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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