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것을 미술 용도로 구입했었다, 인터넷으로 가장 최저가로 찾아보면, 브랜드가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놀고 버리는 용도였기 때문에.
즐겨 읽는 만화나 동화책을 읽고 그리고 싶은 부분을 따라 그렸다. 이렇게 하면서도 그림실력이 많이 도움받은 것 같다. 표현을 구체적으로 따라 그려 보면서 신발은 이렇게 그리고, 옷고름은 이렇게 그리고, 모자는 이렇게 생겼다며 아이들이 쫑알쫑알했다.
나도 덕분에 따라 그려 보면서 옛날 추억에 잠기곤 했다.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 어릴 때도 이런 얇은 종이(습자지였었나?)에 한글을 따라 쓰게 했다. 그때는 선생님이 글자를 따라 쓰게 하는 숙제를 내시거나, 중학교에서 지리 선생님 경우는 우리나라 지도를 일일이 권역별로 따라 그려보게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밑그림에 내 나름대로 상상력을 덧붙여 다른 환경으로 꾸미곤 했었다.
사진으로 다 담아두진 않았지만 아깝게 버려진 그림도 많았다. 동화책 한 권을 다 따라 그렸으니, 정말 볼만했었다. 색연필이나 사인펜, 네임펜으로 색칠도 할 수 있어 이만큼 만만하고 편리한 미술도구도 흔치 않았다.
주방에서도 쓰고 아이들이 필요할 때면 마음껏 꺼내어 쓸 수 있게 했다.
막내가 3살 때 잠자리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잠자리를 척 그려주었다.
어느새 그림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림을 표현할 때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이 손끝으로 표현되는 것이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히 빨랐다. 방과 후 미술 선생님들은 모두 큰애의 미술 실력이 오히려 선생님보다 낫다고 겸손히 표현해주셨다. 선생님들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아이가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면서 자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림을 잘 그린다. 특히 웬만한 여자아이들의 그림은 비슷비슷하다. 그때는 표가 나지 않았다. 그저 그림을 많이 그린다거나, 계속 그린다거나, 남들보다 더 즐겁게 표현하며 즐기는 모습으로 도드라졌을 뿐 그림실력 자체는 비슷했다.
그러나 꾸준히 즐기면서 관심을 갖고 계속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가 즐거워하고 이것이 이 아이의 재능이고 진로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림으로 만화로 곧잘 표현하는 것을 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모녀가 함께 작품을 만들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부푼다.
나는 진로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기다려졌었다. 첫째를 시작으로 둘째, 셋째가 어떤 진로를 결정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당하게 마음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