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던 만들던 붙이던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첫째를 보면, 즐기는 것이 잘하게 되는 지름길이라는 의미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사진을 뒤적이다 보니 아이의 그림과 글을 다시 보게 된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이의 마음이나, 깊이 생각지 않고 다음다음으로 넘어갔던 하루하루도 동시에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다 함께 모여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하다 보니, 둘째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자기 나름의 스타일대로 특징을 살려서 곧잘 그려낸다. 어릴 때부터 유치원 선생님이 둘째는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을 부각해서 잘 그린다고 하셨다.
셋째는 항상 뭐든지 대단했다.
이건 꿈일거야
...
아직 꿈일거야
4, 7, 11살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아이들이 7, 10 ,14살이 되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자고 일어나면 책상에 뭐든지 만들어져 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버티는 엉덩이의 힘이 자꾸만 뭔가를 만들어낸다.
보기에는 간단한데, 이런 것들을 하느라 몇 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아있어야 한다. 바로바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을 풀었다가 다시 이었다가, 종이를 접었다가 폈다가 다시 인쇄를 했다가 또 접었다가 마음에 들 때까지...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아이다워서 좋다. 사랑스럽다.
수업하고 집에 오는 길에 너무 산만해 보이는 남자아이를 만났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는 엄마와 누나의 혼을 다 빼놓고 통제가 되지 않아서, 여러 사람이 진을 뺐다. 그런 아이들은 며칠 마음먹고 기진맥진할 때까지 놀려야 한다.
"어머니, 제발 이제 쉴래요, 도저히 못 놀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잠이 와요,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할 때까지 뛰고 돌아다니고 손으로 땅을 파든지 돌을 쌓든지 자연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도 자기 안에 내재되어있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뭔지 모르게 튀어나오고 통제되지 않는 그 충동을 다스리는 훈련도 되는 것인데, 너무 아이들을 가둬서 키우는 경우도 있어서 안타깝다. 하긴, 요즘 시절이 시절인지라 어디 외출하기도 겁이 나고 여의치 않으나, 그래도 나는 자연이 우리의 마지막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보호할 때, 자연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공기도 환경도, 먹거리도, 바이러스도,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가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큰 아이가 어릴 때만 해도, 그때도 대단히 공기가 맑지는 않았어도 지금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어디 있나 한참 찾아보면 높은데 올라가 있었다.
남자아이들 10명이 놀아도,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아이는 내 딸 밖에 없었다. 동네 엄마들이 나에게 '아들 10명은 키워도 큰 애 같은 딸은 못 키우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했었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를, 어떻게든 자연에서 있게 하고 싶어서 동네 놀이터에 나가 몇 시간을 놀게 했다, 김밥도 간식도 과일도 물도 집에서 다 챙겨나가서 수시로 먹여가면서 에너지를 보충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또 놀고 또 놀고...
지금까지도 놀고 있다. 여전히 위에 올라가 있는 애들은 우리 애들밖에 없다.
노는 것도 놀아봐야 놀 줄 안다고, 나는 잘 노는 아이들이 다행스럽다.
놀라고 시간을 주어도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몰라서 멀뚱히 있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자기 주도성은 놀이로부터 길러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빠른 방법이다.
7살이 된 막내는 자꾸 뭔가를 만들어서 보라고 한다.
요즘에 하루 수십 번 듣는 말이 "엄마 이것 봐!".
이것 보라고 할 때 얼른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서 아이의 자아성취감과 자신감, 뿌듯함이 절정을 찍고, 잠깐 늦으면 '헤잉...' 하고 김 빠진 소리를 내면서 실망한다.
노는 모습을 한창 보고 있으니 아이가 나의 눈길을 느끼면서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이뻐서 계속 보게 되지, 일 안 하고!"
맞다. 이뻐서 계속 보게 된다, 일도 잊고.
성장과정에서 자신감과 사랑받는 느낌, 존중받는 기분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이 반복되는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줄 수도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