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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by 아인잠

그림 그리는 것이 삶의 반인듯 느껴지는 큰아이를 보면 나도 그림이 참 좋아지고, 비록 지금은 내가 글을 쓰지만 언젠가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는 글을 쓰면서 그렇게 해맑게 쓸수가 없고 안될땐 머리를 쥐어뜯고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안써져~~안써져~글이 안써져~~~' 애들앞에서 어리광을 부린다.

그런데 큰아이는 항상 해맑은 표정,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그림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누가 애이고 누가 어른인지 잠시 헷갈릴 때도 많다.

내가 글을 못쓸때는 아이가 다가와 말한다.

'엄마, 글이 잘 안써질때는 마음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봐, 자, 예를 들어볼께. 엄마가 쓰고 싶은 글이 있어, 그런데 주제가 안떠올라? 그럼 하고싶은 이야기는 뭐야? 그럼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그냥 문장으로 적어보는거야. 그렇게 적다보면 어느 문장에서는 글이 생각날수도 있어.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떠올려 적어보는거야. 아니면 차라리 한바퀴 돌고오는건 어때? 어떤 책에 보니 글이 잘 안써질때는 현관 밖에라도 잠시 나가서 서있다 들어오라던데?'


그런 식으로 아이가 나를 어르고 달래가며 쓰게 된 글도 적지않았다.

나는 아이의 말에서 수많은 영감을 떠올리고, 어떤 일에 임하는 자세를 배우고, 포기하거나 시작하거나, 용기를 내거나 쉬거나하는 일상에서조차 이제는 학생 모드로 겸허히 아이의 말을 수용하게 된다.

아이의 말은, 아이라 할지라도 틀린데가 없다.


그런데 어제 아이가 펑펑 울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그려온 습작 노트에 야심차게 콜라를 들어엎은 것이었다.

얼른 털어내긴 했으나, 그림 속 아이는 운명을 예상했던 것일까, 울듯 말듯한 표정을 짓고서 끝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아이는 표현하고 싶은 만큼 해보지도 못하고 노트에 콜라 얼룩이 남은 바람에 마치 집에 초상난 것처럼 울었다.

아직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예전에 내가 벌에 쏘여서 울었을때, 울다 울다 그치지않으니까 엄마가 말했다.

'너 벌에 쏘였다고 그렇게 우는데, 엄마 죽어도 그렇게 울거야?'

그때는 엄마의 말이 황당했지만, 내가 겪고 보니, '아이가 내가 죽어도 이렇게 울 것인가?' 웃으며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가관이었던 것은, 그 순간 나는 아이의 그림을 걱정하는데 10초 남짓 쓰고

남은 30분은 속이 상해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젖은 노트 옆에는, 얼마전 내가 마련해준 30만원짜리 스마트폰이 있었던 것이었다.

스마트폰에 콜라가 들어갔다!!!


와.....

나는 진심으로 스마트폰이 걱정되었다.

아이의 젖어버린, 몇달간의 기록이 담긴 습작노트보다,

울고불고 난리가 난 아이의 마음보다,

내 돈 30만원이 들어간 스마트폰의 안위가.


그리고 고작 내가 한 말은,

우는 마음은 엄마가 이해하는데, 엄마도 진짜 울고 싶다, 스마트폰을 먼저 챙겼어야 해

어흑... 30만원짜리야, 아직 한달도 못썼어ㅠㅠ


원래 폴더폰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면서

모든 수업과 알림, 밴드활동, 수시로 오는 카톡 연락에 어쩔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꿔준 것이었다. 그것도 폴더폰을 사준지 1달 만에, 다시 스마트폰으로 바꿨던 것이기에 나는 이중 삼중으로 돈과 마음을 썼다.


그래도 아이가 나름 응급처치를 잘해서, 우선은 핸드폰은 이상없어 보였다.

기분도 좋아졌다.

내가 힘들때 모든 순간을 내 옆에서 함께 해준 아이옆에서 나는 그 마음을 배신하고 안방으로 피해버렸다.

돈 30만원에 눈과 마음이 멀어서...

'30만원', '30만원'이 눈 앞에서 빙빙 돌더니 나는 잠이 들었었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온 집안이 고요했다. 다행히다. 아이를 야단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서.

나는 30만원보다 다시금 아이의 습작노트가 귀중해졌고

너무 속상하고 슬프게 울던 아이의 마음이 다시 알아졌다.

나는 나와 화해했다.

이런 모지리 엄마같으니라고. 미안한 뜻으로 앞으로 습작노트는 언제든 좋은 걸로 채워주마 약속했다.

그리고 마음껏 그림을 그릴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내가 더 열심히 좋은 글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기쁨이다.

콜라 쏟은 사건은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아서, 앞으로는 노트도, 핸드폰도 젖지 않게 주의할 확률도 높아졌다. 그러니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도 그런 경험 많았었으니! 이왕 겪을것 미리 잘 겪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라고~


엄마하고 나하고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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