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밥을 먹는데 옆에 앉아있는 막내의 허벅지를 우연히 보니 오늘따라 너무 말라 보였다.
뭘 해 먹여서 살을 좀 찌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말했다.
"우리 막내 고기 좀 구워 먹어서 살찌면 좋겠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막내를 둘러싼 기운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뭔 일이 있나 하고 봤더니 울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고 꽤 서글프게 울었다.
밥 먹다 말고 서럽게 우는 막내를 보며 언니 오빠도 걱정이 되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막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나를 고기 구워 먹는데, 으앙~~~ 나를 고기 구워 먹으면 어떡해~엉엉엉"
나는 졸지에 아이를 고기 구워 먹으려는 엽기 마녀 엄마가 되었고, 막내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듯했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나는 표현이 잘못 전달된 거라고 사과했다.
엄마가 하려던 말은 '고기반찬이라도 맛있게 많이 먹여서 막내가 살이 좀 더 찌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이렇게 울릴 줄은 몰랐다.
헨젤과 그레텔을 한동안 잘 보더니 너무 몰입한 건가?
과몰입이 부른 참사였을까.
내가 어렸을 때 몸이 허약해서 친정엄마가 개구리를 고아서 먹였다고 하셨다.
핏기도 없고 밥도 조금 먹던 아이가 개구리를 삶아 먹고는 살이 뽀얗게 오르고 밥도 두 그릇씩 먹기 시작했고 그 뒤로 병치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과 살 때는 아이가 크느라 얼굴이 핼쑥해지거나 마른 체형이면 집에서 뭘 제대로 해먹이는 거냐고 묻곤 했다. 그것이 나에 대한 질타와 불신으로 느껴졌고, 고생해서 일해 뭐든 몸에 좋게 만들어 먹이려던 수고가 하찮게 느껴졌다. 해도 고생 안 해도 고생이면 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존재가 없지만 나 스스로, 혹시나 아이들이 몸이 부실해지진 않는지,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게 된다.
나름 자급자족하면서 필터링을 거치면서 아이들의 안부를 매일 확인한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내가 예민해졌고, 조금은 방만하게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
한창 먹을 때라 돌아서면 배고픈 아이들에게 통닭이라도 한마디 튀겨주고 싶고, 계속 입에 뭔가를 집어넣고 있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이는 증상도 있다.
아무리 먹어도 배도 안 나오고 살도 안 찌는 아이들을 보면, 주변에 애들이 살찌고 머리와 엉덩이가 커져서 고민이라는 엄마들을 보면 살짝 부럽기도 하다. 엄마와 지내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조금은 살도 찌고 포동포동한 느낌이 들어도 귀여울 것 같은데, 어릴 때 내 체질을 닮은 건지, 살 안 찌는 아빠의 체질을 닮은 건지 뭘 먹어도 길기만 하고 옆으로 늘어가진 않고 있다, 아직은.
좋은 점도 있다. 날렵하고 부지런하고 활동적이고 재빠르고 가장 좋은 건 날씬하다. 뭘 먹어도 날씬한 아이들.
부럽다. 그건 내 몸이어야 하는데.
산도 다니고 매일 밖에 나가서 땀을 흠뻑 흘리고 들어와서 밥을 엄청 먹을 때는 차라리 허벅지도 단단하고 애들이 탄탄한 느낌이었다. 요즘 코로나로 몇 달간 그런 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런지 살이 영~ 말랑말랑한 것이 보기가 좀 안쓰럽다.
암튼, 신체의 면적이 커진다고 그것이 건강의 척도는 아니니,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게끔 나는 그것만 바라고 있다.
내 건강도 잘 지키면서 아이들과 즐겁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나가다 보면, 우리의 이런 일상들이 모여서 나중에 할 이야기들이 많을 거라고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