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Mar 21. 2020

정작 '모두'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no' 라고 말할 용기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비평가는 '모두'라는 이름을 가진 전능한 비평가일 것이다."(152p)

저자는 이 세상에 '모두'라는 존재는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가까이는 내 엄마, 내 친구가 내편이기도 하고,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누군가가 조용히 나를 향해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같이 '모두'의 존재와 그 영향력을 받아들인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그래서 진정 가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두'란, 그저 '누군가'일뿐이다. 물론 그 '누군가'가 대다수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 모든 사람 일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모두'가 말하는 것의 범주에는 편견과 선입견에 따른 비판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도 뛰쳐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의 시선이 두려워일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은 모두가 지켜보는 눈 때문일수도 있다.

모두의 입과 눈과 생각이 그렇게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내면의 비평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스스로 감지한 모든 외적 비판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고, 나아가 더 보태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많이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내면의 비판은 '모두'에 의한 비판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고한다. '내면의 비판에서는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당신은 완전히 파멸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편견의 프레임을 씌우고 기회를 거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평등운동 지도자들은 흑인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투쟁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흑인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했다고 한다. 1970년대 여성운동 지도자들 역시 여성을 대상으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 사회에 팽배한 불평등을 스스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내면의 비평가에게 질문을 하라고 제안한다.

"어떻게 내가 제대로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고, 현재 나와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봐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만, 다 같이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바르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그 판단을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싫다', '안된다',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경우, 대게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나, 나의 거절로 인해 파생될 일들을 나의 책임으로 느끼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일로 내가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원인일 수도 있다.


오손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에 나오는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말이 유명하다.


"어린 시절은 아무도 죽지 않는 마법의 왕국이다."


내 내면의 아이가 여전히 아무도 죽지 않는 마법의 왕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에서는 거절하고, no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꼭 필요한 순간에는 더욱.

no라는 표현이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나는 '나'다움으로 다시 태어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갈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에는 나로 인해 아무도 죽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막상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만 신경 쓰느라 다른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라고 설명한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의 저서 <빅 퀘스천>에서 '삶이란 정답 없는 심오한 의문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 정답은 내가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모두'의 비판 어린 시선에 지레 겁먹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더글라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얘야, 넌 항상 직감을 믿어야 한다. 머릿속에서 '네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잖아?' 하는 경계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렇잖아도 인생은 짧다. 더글라스는 "아버지는 70세가 되자 고속열차 차장으로 알아볼 새도 없이 휙휙 지나가는 풍경처럼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라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바쁘게 흘러가는 나의 삶 내 세상에서 더 이상 누군가, '모두'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진짜 이기주의는 '싫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싫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진짜 이기주의는 '안된다'라고 하는 사람에게 되게 하는 것이다. 진짜 이기주의는 '못한다'라고 하는 사람에게 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못하는 일은 남에게도 강요하면 안 된다.

스스로 바라는 삶을 살면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모두가 평등한 행복을 누리면서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주변에, no라고 말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적어보는 글.

결국엔 나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기에.


p.s.

괜찮다. 다 괜찮을 것이다.

학교 졸업하면 꿈도 졸업하는것은 아닐텐데

참기만 하고, no라고는 말도 못하고 이런 걸 원한건 아닐텐데?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있는'거지, '삶'은 아니지...



https://brunch.co.kr/@uprayer/405


작가의 이전글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진실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