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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Mar 19. 2020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진실이 있다.

나를 향한 질문, <빅퀘스천>을 읽으며

사람들은 늘 자신의 거울 속 얼굴을 본다.

자세히 들여다볼때도 있고, 무심히 볼 때도 있을 것이나, 매일 양치를 할 때 거울을 보며 나대해 얼마나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무심코 봤던 나를 가만히 생각해보게 만든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들어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아가죠.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비극입니다."
- <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밝은 세상

내가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저자는 '무엇보다 큰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생을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내가 이해되고 평가되는 부분은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모습인 경우가 많다. 그에 따라 표현되고 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로 나뉜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진실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나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니까.'


그것은 어느 신사와의 대화에서 나타난 저자의 생각에서도 드러난다.


"진실은 언제나 이렇게 논쟁의 여지가 많죠."
그야말로 지당한 말이었다. 진실은 단 한 가지 단순한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략) 두 가지 다른 시각이 존재할 뿐이었다.



서로가 바라보는 진실의 차이, 그 간극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큰 경우에는 혼란이 오기도 한다.

나는 알고 보면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은 나를 용기 있고 외향적으로 보기도 하고, 나는 B형이지만 남들은 나를 O형으로 보기도 하듯이, 내가 나에 대해서 이해하고 생활하는 모습이 남의 시선에 따른 경우도 종종 생긴다. 책을 통해 나를 더 깊이 생각하면서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일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주로 집에서 생활하면서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은 것은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좋은 찬스이다.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의 <빅 퀘스천>은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타인의 겉모습은 종잇장보다 얇은 존재의 표면일 뿐'이라는 표현이나, '열아홉 살 때는 누구나 자신이 인생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나이에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인생의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다'는 문장도 그렇다.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겉모습도, 내가 나를 19세 때부터 인식했던 그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러고보니 내가 살아온 방식이 때로는 생각없이, 나답지 않게 행했던 일들이 거침없이 떠오른다. 그런 수많은 판단들이 나의 길을 엇갈리게 하고 후회나 미련을 남기는 일들이 발생했다. 마치 미쳐 다 튀겨지지 않은 팝콘처럼, 씹지 못하고 넘기지 못하는 알맹이들로 곳곳에 남아있다.

책의 저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당장은 연극 연출을 해보고 싶었지만 글을 쓰는 게 나에게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능히 할 수 있다는 점이 글쓰기가 마음에 든 이유였다.'


다른 이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능히 할 수 있다는 표현에서 나는 멈칫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렇게 정확하게 생각하고 표현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도 이와 같은 이유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혼자서 할 수 있다는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가치 있는 일 중에서 나에게도 글쓰기가 가장 좋은 일이다.

요즘은 작가가 되고싶고 책을 쓰고싶은 사람들이 많다. 친절하게도 책에는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픈 조언의 말들이 담겨있다.

"누구나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엄청난 비방이 쏟아진다는 점을 명심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설령 냉소적인 비방들을 무사히 극복하게 되더라도 작가가 되려는 사람의 앞길에는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의 거절을 충격 없이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혹독한 평을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것이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끈기와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창작에 필요한 기교를 연마하고, 작품에 대해 애정 없는 비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마주 볼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이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고 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더글라스 케네디처럼 이런 자전적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도 등장인물이 스스로 불러들인 불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변화를 모색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는 순간 비극은 희극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작가는 죽어서까지 글로써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그 시대에 살다간 사람들의 못다한 말들이고 소망일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책이 좋다. 세상에는 자신의 말이 옳고 뜻이 합당하며 내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너무 많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을때, 그 순간 우리 삶의 비극이 희극으로 변한다'말하고 싶었나보다.


사람들은 비극을 원치않는다. 비극적 이야기는 신문에서나 작품에서나 보여지는 것이기 원하고,  내 삶 속의 비극은 너무 아프고 어두운  문제이다. 남의 슬픔이 나에게는 기쁨이 된다는 말도 있다.

나부터 살피고, 나의 존재와 나의 진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진정 누구를, 무엇을 위함인지 생각하면서 내 삶을 좋은 이야기로 가꿔가고 싶다. 그것이 인생을 비극에서 희극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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