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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Mar 21. 2020

나만의 책 읽기 '필사'가 주는 선물

나는 평균 하루에 책 1권 정도 읽는다. 못 읽을 때는 이틀에 한 권은 반드시 읽는다. 그렇게 읽으면 한 달에 30권 정도의 책을 읽게 된다. 1년이면 360권이다. 나보다 더 많이 읽는 분도 많지만, 내 생활 내 시간 속에서 가장 적절한 분량은 그 정도인 것 같다. 더 이상 읽고자 욕심을 낸다면 생업에 위협을 받는다. 생활에 무리가 따른다.


일주일에 3권도 읽어보았고, 일주일에 1권 읽기도 해 보았는데, 내 컨디션과 생활에는 매일 1권을 읽는다는 목표로 읽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매일 책 1권 읽는다는 목표로 생활할 때에 가장 컨디션이 좋고 부지런해졌다. 생활을 규모 있게 했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유가 있었고 짜증이 나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짜증이 난다. 그런데 짜증을 내면 기분이 ‘더럽다.’

그렇다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사람이 좋은 쪽으로 변해왔다는 뜻이다.

책을 읽으면 내 감정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었고, 짜증 같은 원시적 반응이 부드럽게 통제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달래듯, 너그러워지고 수용 가능하며 아이들에게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다.

대게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화가 날 일이 없다. 이만큼 키워놨으니 누리는 여유이기도 하다.

나는 예전부터 짜증을 내는 순간에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화를 낸다고 여길 수도 있기에, 화를 낼 거면 제대로 잘잘못을 가리던지 해야지 짜증을 일방적으로 내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공평하지 않은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나는 '짜증'을 내는 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계속 짜증이 나는 남편과 사는 것이 불행했고 기겁하고 독립해 나왔다. 아마 남편도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피차일반이다.


내 기억에 부모님은 나에게 짜증을 내신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부모라는 존재가 나에게 짜증을 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렇기에 내가 짜증을 낼 경우에 내 아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인지 하는 것은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다. 그것이 두렵다. 내가 모르는 영역으로 내 아이들을 통째로 밀어 넣는 것.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일상적인 과부하에 쫓겨 화병 나서 살 수는 없기에 내 감정을 내 선에서 조절하고 어른답게 처신하고자 한다. 그 일이 나에게는 책을 읽는 일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 인간이 착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그 착함은 마냥 착함이 아니라, 내가 마음에 드는 선함이다.

최근에 출간된 김미경 저자의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책에 보면 ‘화’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화’라는 감정은 밖으로 꺼내는 순간,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의 먹이사슬 맨 끝에 있는 아이는 그럼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가 다 끌어안고 산다. 결국 마음의 병을 얻게 되어 우울증이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분노조절 장애 등의 문제도 발생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수록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의 현상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지적인 힘이 부족하면 스스로의 불행을 크게 해석하게 된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는 여러모로 유익하다. 글을 쓰는 데에도,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내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해석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도 책 보다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의 생각에도 조망권이 있다’고 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조망권이 달라지면 인생을 다르게 해석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특히 나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져서 늘 나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표현이 맞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생각 조망권을 높이기 위해서 저자 역시 독서를 추천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때일수록 가만히 혼자 있으면 점점 더 조망권이 낮아진다. 끊임없이 나의 생각 조망권을 넓혀가고 높여갈 때 내 삶을 더 높게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엄마가 책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엄마의 선택이 곧 자녀의 인생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생각 조망권이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방법으로 그저 책만 읽었던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읽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책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두 번 읽은 책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는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 이름만 메모했다. 그랬더니 무슨 내용인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간단하게 느낌 정도만 남기는 기록을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문장의 느낌 외에는 또 기억나는 내용이 없었다.


다음 해에는 책을 읽고 사진을 찍어두거나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입력해서 컴퓨터 파일로 저장해두었다. 그랬더니 저장해둔 것이 쌓여가도 다시 꺼내읽어지지가 않았다. (지금까지도 안 읽고 있다) 계속해서 읽어가야 할 책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부터는 필사를 했다.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하거나, 책을 다 읽고 필사하는 법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하자니, 책 읽는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계속 책 읽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에게 싸움을 걸었다. 필사를 하면서 읽자니 1주일에 한 권 겨우 읽어졌다.

그래서 다음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는 방법은, 책 1권을 밑줄 그으며 다 읽고 나서 필사를 하는 것이다. 필사도 빠른 필기체로 하자니 2-3시간이면 다 하게 되었다. 결국엔 1~2일에 책 한 권 읽으며 필사까지 다 마쳐지는 것이 지금까지 편안하게 하고 있는 나의 독서법이다.


필사를 하면서 읽으면 책의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이해가 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인간의 뇌는 문자로 변환시킨 내용을 장기기억 상태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그냥 책을 읽는 것보다는 손으로 필사하면서 다시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글자를 인식하는 것이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얻는 ‘남는 장사’이다. 그렇게 읽고도 더 기억에 남기고 싶을 때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거나 글을 모으는 개인 파일에 따로 정리한다.

사진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남겨봤지만, 기억에 남겨지지 않았다. 오로지 내 손으로 쓴 글자만이 기억에 남았고, 당연히 전체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글을 읽고 필사하는 경험을 통해 ‘저자와 같은 생각에 머무는 시간’을 선물 받는 느낌이었다. 책과 저자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소중한 교감의 시간이다. 작가도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몇 번을 읽고 수정하고 확인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 단계와 시간들을 따라가면서 읽는 느낌은 마치 눈 위에 찍힌 하얀 발자국을 따라서 나의 발을 얹는 것과 같다. 저자가 걸어간 상념의 길을 따라 걸으며 저자가 바라본 경치를 나도 바라본다. 저자가 걷다 머문 곳에 나도 앉고, 저자가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가는 길을 따라 나도 다시 걷는다. 그러면서 저자가 느끼고 생각했을 일들을 나도 생각한다. 그것이 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은 20분 후 40%가 뇌에서 사라지고, 1주일 후에는 74%가 사라진다고 한다. 배운 것과 복습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인간의 기억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시간을 관리해 하루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되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감각이 만들어지게 된다. 감각의 축적이 자신감을 키우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 사고로 바뀐다고 한다.

- <모닝 루틴> 참조. 쓰카모토 료 지음. 장은주 옮김. 위즈덤하우스


독서와 필사는 여러모로 좋은 학습이자 생각의 도구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잡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개인적인 나하고도 거리를 두는 방법이다.


영국 작가 아널드 베넷은 <시간 관리론>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의 지갑은 '24'시간이라는 천연 화폐로 채워져 있다"라고 말했다.

나의 24시간 중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은 결코 헛되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책의 내용은 아무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게 읽어온 시간과 경험으로 인해서 지금의 나도 존재하는 것이다.

헛된 독서는 없다. 헛된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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