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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pr 07. 2020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의 키는 2미터

아이들을 키우면서 집에 항상 떨어지지 않게 두었던 몇 가지 재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색종이라던가, 가위, 풀, 색연필, 사인펜, 노트, 수첩, 종이, 신문지, 테이프, 스티커, 자 등등.

뭐든 수시로 뚝딱 만들고 놀거나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 쓰게 하는데 이만큼 좋은 재료들도 흔치 않은 것 같다. 육아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요충분 재료들.

이에 하나 더하자면, 밴드이다.

넘어지면 붙이고, 조금만 피부가 쓸려도 붙이고, 아주 작은 '' 같은 상처라도 무조건 갖다 붙이고 보는 일회용 밴드는 실제 아플 때도 쓰지만 병원놀이라던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머리가 아프면 이마에 밴드를 붙이고, 마음이 슬플 때도 밴드를 붙이고, 병원 놀이를 할 때에도 붙이고 인형에도 붙여둔다. 아이들에게는 밴드를 붙이면 만병통치약이  되는 순간도 많다.

엄마가 호~ 해주는 입김만큼 따스한 순간은 밴드의 포장지를 벗기는 그 순간이다.

밴드가 아이들을 위로하리라!


텐도 아라타의 <붕대 클럽>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붕대를 감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까닭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상처를 받았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나 아닌 사람들도 '그건 상처야'라고 인정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닐까."

밴드를 붙이면 나의 상처를 누군가 보듬어주고 알아주는 느낌이 들어  위로받는 기분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파서 울다가도 '밴드 붙이자' 하면 눈망울을 꿈벅거리며 눈물을 뚝 그치기도 한다.

이런 일상의  '밴드'가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어른들은 웬만해서는 밴드를 붙이지 않고 넘어가는 순간도 많은데, 아이들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아픈 마음에 작은 밴드를 하나 붙여주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아픈 시기이다. 누가 나를 아프게 할지, 내가 누구를 아프게 할지 모르는 시대이기에, 코로나는 우리를 서로 의심하게 만들고 조심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는 사회적 거리를 낳았고, 사회적 거리는 마음의 거리를 낳았다.

그런데 어느샌가 마음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마음의 거리가 좀처럼 벌어지지 않고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서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서 나는 오히려 당신의 눈을 자세히 보고 있었다.

평소에 알지 못했던 당신의 눈과 눈썹의 길이와 눈동자 색깔까지, 눈빛의 깊이와 눈빛의 따스함까지 새롭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회적 거리로 인해 들어온 당신이 내 생활 반경 2미터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과 내가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유지해야 할 거리가 2미터인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는 내 마음의 키가 2미터라고 생각하로 했다.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며, 소중한 존재이고 싶은 사람들이니,

비록 지금은 가까이 가지 못하더라도, 함께 할 나날들을 기다려보고 싶다.


"세계의 어느 한 곳의 누군가는 알아준다. 나의 아픔, 나의 상처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 텐도 아라타의 <붕대 클럽>, 문학동네


오늘도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내 상처를 알아봐 주어 고맙고, 나를 발견해주어서 고맙고, 당신의 2미터 안으로 나를 들여보내 주어서 고맙다.

우리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 않을지언정 그리 멀지 않다. 우리의 눈 속에 서로의 모습이 비추는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날 곧 올 것이 믿는다.

사회적 거리는 멀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더 가까워지기 위함임을 생각해보며, 지금 이 코로나 시기를 잘 지내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신 덕분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우리의 2미터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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