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Apr 30. 2020

이별하는 중입니다.

‘사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별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말이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 주인공이 이별을 선언한 남자 친구에게 전화로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이별하는 법 몰라, 이별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사랑만 가르쳐주었잖아.”

나도 이별하는 법을 모른다. 이별이라는 것은 전화를 받지 않는 것,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 이제 더 이상 ‘우리’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 내가 혼자가 되는 것.
나도 여러 이유로, 어떤 계기로 누군가와 쉼 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살아왔다.
왜인지 모르게 나에게 다가와 떠나간 사람도 있고, 만나다 헤어진 사람도 있었다.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연결되지 못하고, 정리된 관계, 잊혀진 관계, 멀어진 관계, 불편한 관계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갔다.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끝나버린 관계
서로 볼일이 없어 멀어진 관계
살다 보니 잊혀진 관계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진 관계
이제 나와 상관없는 관계.
그러나 그런 관계를 거치면서도 나는 제대로 이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이별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언제든 갑작스럽고 힘든 이별이기에

이별은 빠르게 돌아서면 잊힌 듯이

그렇게 알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별은 이별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 이별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이별이 준비되었는데 상대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 그 이별은 고통이 되고
나는 이별을 원하는데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경우, 그 이별은 슬픔이 된다.
고통도 슬픔도 그 속에 원망과 미움, 분노와 포기, 자책과 환멸의 씨앗이 있어 그러다 스스로 파탄의 길로 갈 수도 있음에 나는 두렵다.


그래도 끝은 있을 거라 믿으며 이별의 시기를 견뎌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이별을 기다리는 마음이 마냥 편하고 좋을 리가 없다. 이별이란 단어에서는 눈물 방울이 느껴진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별, 눈물에 어리는 반짝임이 슬픔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받아들이기까지 어느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별은 언제 다가와도 아프고 슬프다. 나에게 이별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디론가로 떠나고 싶다.
그리고 한 달 정도는 푹 파묻혀서 책 읽고 글 쓰고 혼자 있고 싶다.


이별은 내 마음에 들 수가 없다. 온 세상에 이혼하고 싶다고 외쳐도 돌아서서 무거워지는 마음은 그만큼 흘려온 눈물의 무게 때문이다.


아프고, 무겁고, 힘들었다. 이제 그만 이 기나긴 이별의 터널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것이 다시 또 이별일지라도, 내가 끝까지 가야 할 이유.
이제 그만 이별하게 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