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그 아이와 처음 눈이 마주친 날은 3월 개강 후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옆 친구에게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여자아이들이 주변에 몰려있었고, 풀 메이크업으로 변신해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 친구가 화장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4학년 내내 A+학점을 받는 것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모든 과목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점수를 받고 A+학점을 받아낸 것이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 모든 과목에서 A+이 될까 궁금했다. 아무리 보아도 다른 점이 없었다. 교재도, 노트도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 아이와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천재구나.
아주 심플했다. 그냥 천재 같았다. 국문학과여서 한자가 많이 나오는 고전문학 수업에서도, 모르는 한자가 없었고 내 눈엔 교수님보다 더 한 지식을 갖고 있는 아이로 보였다. 교수님이 하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듣고 오히려 그 보다 더 한 지식에서 나오는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과 학자 대 학자로 대화가 가능한 아이였다.
그런 점들이 놀라웠다. 게다가 착했다. 남을 미워하거나 욕하는 것, 시기하고 무시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아이가 심지어 나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같은 마음으로 바라봐주니, 그런 좋은 아이를 알게 된 것이 대학과정 내내 행운이었다. 서로가 가진 재능과 모습들을 동경하고 좋아하고 인정해주면서 우리는 교정을 거닐고, 이야기를 나누고, 김치볶음밥을 싸와서 나눠먹고, 과일을 깎아와서 학교에서 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추억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제대로 된 연애는 아니었으나 일단 시작은 좋았다. 모든 시작은 풋풋하고 설레고 아름다우니까.
그때 친구가 데이트하라고 옷을 골라주겠다고 해서 가게에 갔는데, 어쩜 그 아이는 옷 고르는 데도 천재 같았다. 대충 보는 것이 아니고 원단과 시접, 디자인과 디테일, 이 옷을 사서 몇 년 동안 입을 수 있을지, 4계절 내내 입는 법, 다른 옷과 받쳐 입고 어떤 코디가 가능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두의 색상과 디자인까지 어울리는 경우의 수를 다 알려주었다.
하나를 잘하면 두 개도 잘하고, 세 개도 잘하기가 쉬운 걸까. 뭔가를 했다 하면 끝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자도 완벽, 영어도 완벽, 그림도 완벽, 노래도 완벽, 달리기도 완벽, 글도 잘 쓰고 논문도 잘 쓰고 공부는 모두 A+에...
그래서 그 녀석은 도대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모든 것에서 완전하고 완벽하던 친구, 그러나 스스로도 빈틈이 많고 어울렁 더울렁 넉살까지 좋았던 그 예쁜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나는 그 친구를 생각했다. 그 아이라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그 아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래서 위태할수록 그 친구가 더 생각이 난다.
요즘 그 친구가 더 생각이 나는 것은 딸아이의 그림을 보면서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짓는 표정과, 말투, 스타일 모든 것이 그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세상에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얼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얼굴,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유치원 다니는 아기가 듣더라도 이해되도록 쉽게 하고, 어떤 말을 듣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집중력. 그러면서 자신의 생활을 여유롭게 확실히 해나가는 태도. 그러면서 유머스럽고,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
쿨하고, 인정스럽고, 흔들리지 않는 처음 마음. 따뜻함...
항상 어른보다 낫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대범함, 용기, 사랑스러움, 때론 엉뚱함 까지, 어째 나보다 내 친구를 더 닮은 느낌도 든다...
어느 봄날, 마치 이제 마지막인 듯 교정에서 내게 초상화를 그려 선물해주었었는데...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그만 잃어버렸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내 초상화...
보고싶은 친구, 살다보면 언젠가 꼭 만나지면 좋겠다.
문득 그리운 친구 생각 by 아인잠's gi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