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왔는데, 일을 끝내고 집에 가려니 하늘이 이랬다.
낮에 집에서 나올 때는 맑은 하늘을 보면서 왔는데, 나왔다 들어가려니 하늘이 온통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일기예보대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요즘 일기예보는 참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버스를 타자마자 유리창 밖으로 엄청난 물폭탄이 쏟아져내렸다.
도심의 도로는 금방 하천으로 변해서 물줄기가 콸콸콸 흘러내려갔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온 몸이 다 젖어서 물을 뚝뚝 흘리며 버스에 탔다.
비 소식을 듣긴 들었는데,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았던 나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아예 비를 맞을 각오를 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비를 보면서 생각했다.
'비가 참 많이 오네...'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이런 날이 있었다. 첫째 손을 잡고 둘째는 겨우 아장아장 손 붙잡고 걷게 해서 산책 겸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물폭탄이 떨어졌다.
1초 2초 셀 순간도 없이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었었다. 집까지 걸어가려면 10분 정도는 더 가야 할 거리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산이 없고, 어린 두 아이가 함께 있어 뛰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왕 이리된 거 맞자. 비를.
그렇게 생각했다.
피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맞는 비는 차라리 후련하다. 그리고 이왕 젖은 몸이라 비를 피해 들어갈 곳도 찾지 않게 된다.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신이 났다. 나도 즐거웠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신나고, 나는 힘나고.
엄청난 비를 맞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을 씻게 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고 몸을 담그고 쉬게 했다. 후다닥 샤워만 얼른 끝낸 나는 아이들이 목욕을 할 동안 얼른 옥수수를 한 냄비 가득 쪘다.
옥수수가 익어갈 무렵, 아이들도 욕실 밖으로 나왔다.
머리를 얼른 말려주고, 거실 책상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은 금방 쪄낸 옥수수를 맛있게 먹었다.
옥수수를 먹으며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있는데 순간 반짝하더니 번개가 쳤다. 그리고 온 아파트가 정전이 되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집 안도 깜깜하고, 집 밖도 깜깜했다.
마침 만들어두었던 향초를 꺼내어 불을 밝혔다.
그리고 노트북 배터리 덕택에 영화를 끊이지 않고 봤다.
온 동네가 불 꺼진 깜깜한 저녁에, 향초를 밝히고 옥수수를 먹으며 영화를 보던 아이들, 그때 그 추억을 아이들을 비가 오는 날이면 얘기한다. 비를 흠뻑 맞아보았던 아이들은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갑작스레 비가 와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비 오면 맞고, 집에 와서 쉬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생각 속에서 아이들이 옥수수를 다 먹어갈 무렵, 버스가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손님들을 위해 정류장을 조금씩 지나서 세워주었다. 정류장 앞에 불어난 물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어서, 그나마 물이 얕은 곳 앞에서 버스를 정차하고 손님들을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