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피는 계절에 이혼해요.

by 아인잠

저 결혼해요.. 하는 말보다 저 이혼해요 하는 말이 더 설렌다.

결혼하고 싶다는 말보다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이혼해서 얼마나 좋을지는 내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하지만 별거기간 만으로도 좋았다. 먹이고 입혀야 할 남 같은 남편이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월급 못 받고 일만 죽어라 하는 것 같던 억울함에서 벗어나 내 생활을 살아가는 것, 나의 열정과 헌신 페이를 저당 잡히지 않고, 나의 행복과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것을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유를 느꼈다.

자유에는 댓가와 책임이 따르는 법, 나의 책임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생활비를 벌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추구했던 자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책 보고 글 쓰고 아이들과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생활하는 것. 허구한 날 빚쟁이가 찾아와 내 멱살을 잡는 것도 아닌데, 허구한 날 그렇게 쫓기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편안하다. 고지가 눈에 보인다. 내 인생에서 드디어 이혼이라는 걸 해보려는구나.


이혼은 특권이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혼은 명예다. 결혼생활을 훌륭히 끝내고 졸업하는 자에게 주는 훈장. 지난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얻어낸 쟁취에 대한 빛나는 명예.

이혼은 자유다. 구속으로부터, 더 이상 속박당하지 않고 메이지 않고 제도나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혼은 수련이다. 살아가면서 이혼 정도는 한 번 해봐야 안 쓰던 근력을 키우고 강해진다. 맷집도 생기고 판단력도 생긴다.

이혼은 정리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는 것, 헤어지는 때를 좀 더 앞당겼을 뿐이다. 더 미워하지 않고 더 분노하지 않고 더 망가지기 전에.

이혼은 보람이다. 결혼하고 살아온 보람이 이혼에서 꽃핀다. 이혼 안 하고 계속해서 잘 살 거면 상관없지만, 결혼이 불행이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 아이들이 나중에 만약 이혼한다고 해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아니, 내 아이들을 앉혀놓고 잡기 전에, 배우자를 불러서 가는 길에 꽃을 뿌려줄 것이다. 살아주어서 고마웠고 참아주느라 고생했고 이혼하는 과정까지 함께해서 의미 있었다.


이혼한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나이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나는 나이고, 아이들의 엄마로서 존재할 것이다.

내가 나이듯, 그도 그답게 아이들의 영원한 아빠로서 잘 살아주기를 바란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 국악 동요 「모두 다 꽃이야」 중에서


이제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만이 남았다.

이제 그가 두렵지 않다. 고맙다.

의미 있는 헤어짐, 의미 있는 이별...

보람 있었고 의로웠고, 훌륭했고, 즐거웠다.

내 결혼생활이여, 이젠 정말 떠나보내도 될 것 같다. 이제 안녕.



"사랑이 이울어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슬픈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며."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꽃다운 안녕 by 아인잠's girl.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에 나 혼자만 작아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