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사랑이 왜 이렇게 다가오지 않는 건지, 타이밍을 놓쳐서 안타까운 건 연애 때나 이혼 때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헤어짐도 ‘타이밍’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인이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해준 이야기이다.
‘사람은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혼을 하고, 이해력이 부족해서 이혼을 하고
기억력이 부족해서 재혼을 한다’고 한다.
지인은 현재 결혼생활 중이고 이혼할 일도 없어 부족한 것이 하나밖에 없는데
나는 이혼하는 중이니 부족한 것이 두 개인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이혼한다고 하니 지인이 나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이렇게 예쁜 아내를 왜 이런 식으로 놓치는 건지 속상해서 운다고 했다.
이렇게 예쁜 아내인 줄 알았으면 함께 살 때 잘했을 텐데, 내가 내 미모를 제대로 어필을 못한 건지 그가 몰랐던 건지, 아마도 결혼생활 중에 이미 판단력이 부족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눈에 콩깍지가 살짝 덮여야 하는데 아주 제대로 덮여서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덮어버렸나 보다.
이해를 잘해야 하는데 이해도 잘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부족한 사람들이 만나 결혼하고 살다 헤어지느라 갖은 수고를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헤어짐이 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더한 꼴을 보지 않고, 더한 꼴도 보이지 않고, 서로가 그나마(?) 좋은 과정을 거쳐서 이혼 중이니 말이다.
부모교육을 받기 위해 법원에 갔더니, 의외로 나보다 더 심한 사례가 많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같이 살 때에야 한때는 물어뜯고 싶게 싸웠지만, 헤어져서까지 싸울 생각은 없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내 행위 속에 판단과 결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어떻게 내가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에리히 선생님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 한 권을 어떻게 쓰셨을까. 나는 기술이 일천하여 사랑에 대해서 쓰지는 못하겠다.
「사랑의 기술」에서 저자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마치, 자전거 타는 법과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우듯이... 사랑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배움이라고 한다.
맞는 말 같다. 사랑을 잘 배워서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간다면 인생이 행복으로 꽉 찰 것 같은데 결국엔 사랑을 잘하지 못해서 이별에까지 이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랑하는 순간은 가장 애틋하고 행복하지만 실제 사랑은 시작이 아니라 ‘과정’이고 ‘끝’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한 기술을 쓴 책이 <사랑의 기술>이다.
사랑은 감정을 넘어 선 ‘의지’이며 ‘약속’이라고 한다. 시작할 때의 설렘으로는 사랑은 거저 유지될 수 없다. 오히려 서서히 사라지는 감정에 의지로 깊이를 더하고 희생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사랑을 유지하는 과정이며 끝이 아닐까.
사랑을 할 때의 모습으로 사랑을 마칠 때의 얼굴도 웃음이면 좋겠다.
할리우드 커플처럼 ‘친구’는 못되더라도 이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사람에 대한 사랑을 배워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혼 후의 사람이 더 멋져지고 인생이 충만한 행복으로 이루어져 가면 좋겠다. 내가 가진 사랑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희망이 필요한 곳에 희망을, 용기가 필요한 곳에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누워 나의 글을 보시며 마음의 힘을 얻는다는 분, 병상에서 내 글을 유일하게 챙겨 읽으신다는 독자님, 남편의 폭력을 피해 숨죽여 읽으시면서 하루하루를 붙잡고 살아가신다는 분, 그런 한 분 한 분의 독자님이 계시기에 글을 계속 써야 할 이유가 생긴다.
비록 단 한 분의 독자가 계시더라도, 그래서 글을 써야 할 이유.
글은 나의 사랑이고, 사랑에 대한 의지이다.
그래서 나의 과정도, 끝도 글이 될 것이다.
비록 사랑엔 서툴지만, 이별은 좀 안다. 복습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이별 중에 계신 독자님, 괜찮아요, 힘내세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경로가 단지 그런 과정인 거예요. 조금 더 가다 보면 제대로 길이 보일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시. 안도현 님의 <외로운 땐 외로워하자> 중에 이런 표현이 있다.
“산과 들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차게 되는 까닭은 아주 작은 풀잎 하나,
아주 작은 나뭇잎 한 장이 푸르름을 손안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푸르름을 손안에 꼭 쥐고 놓지 말기. 태풍이 불더라도 바람에 따라 날아가서 또 다른 언덕에 놓이게 되더라도, 절망치않고, 포기하지 않고 나의 푸르름으로 세상을 푸르게 하는 하나의 잎이 되기를 바란다.
우린 지금 지구별 여행 중이니까. 여행은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이별도 겪게 되는 것이니까.
나의 의지로 택한 이별이기에 기쁨이 있다. 의지로 사랑하듯, 이별도 나의 의지로.
그렇기에 이 의지가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의지는 사랑을 하게 만들 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