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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 지켜낸 40년 간의 꿈

<배우 정진영 님의 영화감독 데뷔 기사를 보고>

by 아인잠

“50대 후반이면 살아온 것을 돌이켜볼 나이죠. 무엇에 대한 갈증이라기보다 용기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정진영 님이 영화감독 데뷔를 하신다는 기사를 보았다.

33년 차 베테랑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첫 '데뷔'라 긴장한 표정으로 인터뷰하신 글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설레었다.

누군가의 꿈에 대한 이야기에 나는 늘 설렌다. 마치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아서, 나는 한 글자도 흘려듣지 않고 새기면서 노력하고 싶다.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껏 겁냈고, 사실 지금도 겁난다'


“왜 자신과 어울리지 않은 짓을 해서, 지금껏 쌓아온 일에 금 가게 하나, 그런 말을 들을까 봐 겁났죠. 사실 지금도 겁나요. 근데 겁내다가 인생 다 지나가는구나.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더라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 그런 뻔뻔함을 가지게 됐죠. 어떤 갈증이 있었다기보다는, 용기를 갖게 된 게 큽니다.”

우연히 대학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다 배우가 된 그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감독의 일을 지켜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라 생각했다고 한다.

“솔직히 감독의 꿈을 포기했었죠. 내가 감당 못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더 늦게 전에, 용기를 냈고, 3번째 쓴 시나리오로 데뷔하게 됐어요. 앞서 쓴 2편의 시나리오는 제 판단에 기존 영화 내러티브와 너무 유사하더라고요.”


그는 '겁이 났다'는 표현을 했다. 데뷔 신고식을 치르는 순간까지도 겁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아직 대중에게 선보이기 전의 떨림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첫 작품, 첫 꿈, 첫 데뷔, 첫 꿈을 이루는 순간 앞에서 어느 누가 떨지 않고 일상처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이미 앞서 쓴 2편의 시나리오는 스스로 자기 검열을 통해서 세상에 꺼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노력을 딛고 세 번째 쓴 시나리오로 이번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것이라 했다.

무수히 많은 날들 속에서 그는 꿈을 접었다가 폈다가 했을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 접는 날이 더 많았을 것이나 어느 순간부터는 펼쳐본 날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각성하고 결단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용기'를 내기로.

어떤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는 용기, 그는 뻔뻔함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흔히 표현하는 말로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뻔뻔함이 아니라 fun fun 함,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용기.

그래서 그분의 꿈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그것은 진정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용기 있는 자만이 해날 수 있는 과정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꿈을 보면서 나의 꿈도, 무수히 많은 밤에 접혔을 수많은 꿈들도 하나 둘 세상으로 나오면 좋겠다.


조용상 저자의 <생존력>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하, 시키지도 않을 일 한답시고 일만 저지르는 부하,

시키면 시킨 것만 겨우 해내는 부하, 시킨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하,

묻지 않으면 아무 말도 안 하는 부하, 찾지 않으면 보고 하는 것도 잊어버리는 부하,

완결될 때까지는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상의는 물론 전혀 말이 없는 부하...”


저자는 직장생활 중에 볼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부하의 모습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부하가 되어야 훌륭한 상사가 될 수 있는 티켓을 딸 수 있다. 부하 때는 부하 노릇 잘해야 되고, 상사가 되면 상사 노릇 잘해야 된다. 부하 시절을 안 거치고 상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나 자신에게 대입해서 생각해보았다.

“마음에 꿈을 품고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나,

마음먹은 일 한답시고 일만 저지르는 나,

마음먹은 것만 겨우 해내는 나,

마음먹은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

스스로 아무 노력도 안 하는 나,

살아가면서 꿈을 잊어버리는 나,

완결될 때까지는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은커녕 아무 개선을 하지 않는 나...”


어떤 내가 될 것인가, 어떤 내가 되어 꿈을 이루어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꿈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다.

나는 '꿈을 품고 노력해서 마음먹은 것을 기어이 이뤄내는 나'이고 싶다.

배우 정진영 님처럼, 17세에 꾸었던 꿈을 40년이 지나서도 용기를 내었다고 말하며 세상의 빛을 보게 할 수 있도록.

“영과후진(盈科後進)” , “물은 웅덩이를 채운 후 앞으로 나아간다” 는 의미로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물은 빈 곳이 채워져야 다음으로 나아간다. 건너뛰고 넘어가는 법은 없다.

하루하루 건너뛰지 않고 웅덩이에 물을 채워갈 일이다.

정진영 님은 '17세에 꿈꿨는데 57세에 꿈을 이루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건 17세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잊지 않고 매일 생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보통은 '내가 17세에 어떤 꿈을 꾸었더라?' 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 쉽다. 그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57세에 이루어낸 40년 묵힌 꿈이 이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누군가 고이 키워낸 40년간의 꿈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마치 귀한 보물을 손에 받아 든 것처럼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소중하다. 누군가 이뤄낸 꿈은 더욱 가치 있다.

40년간 묵묵히 해온 노력, 무수히 많은 날들 속에서 접히고 펼치며 새겨진 수많은 선들이 그 꿈의 소중함을 증명한다.

이미 100세 시대에 접어든 이때 앞으로 40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떤 꿈을 꾸며 어떻게 이루어가며 살 것인가. 이미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반 이상 성공한 것 같다. 물론 그는 여전히 목마르겠지만.

그분의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꿈들도 계속해서 이루어져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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