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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May 27. 2020

따뜻한 수제비의 기억

엊그제 저녁에 수제비를 먹었었다.

수제비만 보면 비오는 날이 떠오르고, 하얀 연기 사이로 보여지는 호박 고명과 뽀얀 수제비 반죽이 입맛을 돌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힘들었을때 나에게 수제비를 만들어준 어느 분이 떠오른다.

가만히 앉아있기도 지치는 뜨거운 여름 날에, 아이 둘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놀고 있었다.

그때 간혹 마주쳤던 아기 엄마가 어느날 내게 말했었다.

'저희 집 가서 간단히 수제비 한그릇 같이 드시겠어요? 어제 반죽을 많이 만들어두어서요...'

그래도 될까 싶다가 아이들끼리 많이 친해져서 나는 이끄는데로 수제비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가서 손씻고 아이들 좀 돌봐주고 있는데 금세 수제비 한 냄비를 끓여내왔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두고...

아기 엄마는 아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해먹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렇게 남이 차려준 음식을 김치 하나만 두고 먹는데도 얼마나 맛있던지, 아이들 4명, 어른 2명이서 큰 냄비 가득 끓여낸 수제비를 다 비웠다. 참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래서 그 분께 배운 수제비를 나도 곧잘 만들어 먹는다.먹을때마다 그 분 생각이 난다.

그때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남의 집 가기도 민폐스러웠고, 남들을 초대하기에도 조심스러운 때였다.

그런데 기꺼이 먼저 손내밀어 주셨던 분, 수제비까지 맛있게 끓여주신 분이라 내내 기억이 난다.

어떻게 살아가고 계실까 한번씩 궁금해진다. 연락처도 바뀌어서 연락할 방법이 없는지라 마냥 생각 속에서만 떠올리게 된다.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고, 그래서 음식을 떠올린다는 것은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황석영 작가의 <밥도둑>이라는 책에 보면 음식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중 감옥에 카드깡으로 들어온 아이와 부침개를 먹으며 나누던 짧은 대화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목이 멘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이 된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 나서요.”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가 되면 하는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그 노인이 밥숟가락을 놨다더라, 얼마 못사실듯 해..."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 먹는 것만은 아니지만, 산다는 것은 먹는것이다.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밥도 먹고, 꿈도 먹고, 돈도 먹고...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친구에게 지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먹고 사는게 중요하지, 뭐가 중요해?'

꼭 나들으라고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나도 요즘 먹고 사느라,아니, 애들 먹이고 사느라 수고하는 중인데, 그런 수고라면 모든 부모들이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니 억울할 것도 없다.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

다만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일들 중 하나는 함께 먹고 사는 일로 즐거움을 나누며, 서로의 애정과 감사를 나누는 일이다. 그래서 저자의 말이 참 가깝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이명윤 시인의 시 중에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이란 시가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다.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 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 이명윤 시인의 시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중에서


마음에 펄펄, 추억이 눈처럼 쌓인다.혼자 쌓이는 눈이 쓸쓸히 느껴진다.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는 날,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 먹으면 힘이 난다. 마음의 강가에 우뚝 서서 추억해보는 당신과 함께 했던 따스한 기억,

오래 머물러 있고 싶은 그때의 음식들, 세월은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은 내 기억 속 그때의 맛, 그때의 당신.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흐릿한 당신의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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