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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04. 2020

여기서 시작하는 글쓰기

메이 사턴의 <혼자 산다는 것>은 일기 형식으로 쓰인 책이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의 저자 캐롤린 하일브런이 말하길, 1973년 사턴의 책 출판으로 ‘현대 여성 자서전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참조. (수전 티베르기앵, 책세상)     


일이 그렇다면, 정말 사턴의 일기는 무엇이 다른지 그 특별함이 궁금했다.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에 소개되었을 뿐인 그녀의 길지 않은 글에서도 느껴졌다.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까지 내려가게 하는 글의 힘이 그녀에게 있음을.    


9월 15일

여기서 시작이다. 비가 온다. 바깥의 단풍나무를 바라본다. 이파리 몇 장이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앵무새 펀치의 혼잣말에 귀를 기울이고, 창문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이곳에 혼자 있게 되었다. 마침내 다시 내 ‘진정한’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중략)     


이에 대해 수전 티베르기앵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근원이란 다른 무언가가 그 안에서 기원하거나 생겨나는 밑바탕을 말한다. 영단어 ’matrix’는 화석, 보석, 수정 등이 묻혀있는 천연 물질인 모암母巖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사턴은 어떻게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근원의 내부에 자리 잡은 거친 바위 투성이 심연으로 돌파해 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독자인 당신을 근원, 당신의 창조성이 파묻혀 있는 장소인 그 거대하고 텅 빈 침묵 속으로 초대한다.'


오늘 나의 기분과 느낌, 감정, 내가 원하나 주저하는 일상 속의 문제들에 대해 일기를 써보면 어떨까. 많은 분들이 글쓰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자신의 근원으로 들어가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들여다보지 않는 게 오히려 편안한 일상, 힘들여 쓰지 않아도 삶에서 달라질 것 없는 여유, 이것은 안분지족의 삶이 아니다. 안락하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쓰는 글은 일기가 된다. 그러나 매일 쓰지 않는다면 구태여 일기를 써볼 일이다. 일기를 쓰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시야를 밖에서 안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내가 뭐했지? 내가 뭘 느끼지? 지금 내가 어떻지?’

내 마음과 생각, 처한 상황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한다. 망원경으로 보던 삶에서, 돋보기로 보던 생각에서, 이제 현미경으로 바꿔보기 시작하는 순간이 일기를 쓰는 순간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순간은 자신조차도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일이다. 이를 수전은 ‘내면의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열린다’고 표현한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가져다가 그것이 당신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끌고 가게 하자. 당신은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스스로를 위한 다리가 되어 더욱 깊은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한 다리가 되어 공통의 인간성을 함께 발견한다.’ (41p)

-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중에서.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다.

나는 사턴의 일기에서 본 표현처럼 ‘여기서 시작’ 하자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시작이다.’ 그 뒤에 나는 어떤 말을 이어 쓸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시작이다. 나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시작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출근한 일상이 전쟁 같다. 그 전쟁 속에서 피를 튀기며 달리는 사람이 나라니. 마치 군인이 된 것 같다. 총성 없는 전쟁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내 몸이 누비며 내 온몸에 총알이 날아와 박힌다.

여기서 시작이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다.

여기서 시작이다. 나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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