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다 유랜드의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을 보면 사람은 누구나 독창적인 재능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욕망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름하여 ‘창조적 충동’.
모든 어린아이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아기 때부터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만지고 관찰하고, 표현하려 합니다. 그 창조적 충동이자 본능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점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아이들은 비슷한 교육과 비슷한 지적을 받으면서 성장해갑니다. 주로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선에서, 어지럽히지 않고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절제하는 것을 먼저 익히면서 말이죠.
글쓰기는 어쩜 여기서부터 제한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한글을 배우며,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안 좋아지는 것도 대부분 글을 익히면서 시작합니다.
글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건지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의 실력이 이해가 안 되고, 멀쩡한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것도 쏟아부은 돈에 비해서는 납득이 안될 때가 많지요. 대게는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이 일이 다 일어납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저자는 ‘상상력은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일찍 글에서 멀어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몹시 안타까운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축복 같은 상상력을 억누르면서 사람들은 재미없는 일상을 반복해서 생활하며 뭔가 새로운 건 없을까 무료하고 따분해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반짝이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이죠.
위대한 시인이자 예술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일찍부터 창조력을 중요하게 강조했어요.
창조력이 모든 사람들 속에 평생 동안 생생히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창조적 힘이며, 나머지는 팔다리와 내장과 물질적 욕망과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합니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 24p)
창조력을 살아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저자는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그것을 사용하고 분출시키고 그것에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창조력을 사용하고 분출할 시간을 얼마나 내주고 있을까요?
블레이크는 자신의 에너지가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가 아닌 다른 데로 분산될 때면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자칼과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는 중”이다.
이에 저자도 계속하여 강조합니다.
“의무보다는 글쓰기, 그 창조적 노력, 즉 상상력의 사용이 맨 앞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적어도 당신 삶에서 하루 중 잠깐이라도 그래야 한다. 당신이 상상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다. 당신은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이해력이 깊어지고, 생동감이 넘치고 쾌활해지고 타인에게 관대해질 것이다.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 감기 따위는 사라지고, 좌절감과 지루함에서 생기는 다른 질병들도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약 광고가 아닙니다. 글쓰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모든 신사들은 소네트를 썼다고 해요. 그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표현하고 싶었든, 과시하고 싶었든) 사랑의 소네트를 썼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떤 숙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한 귀족이 어떤 숙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상상해보아요. 떨어져 있던 연인에게 손편지를 썼던 예전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고요.
몇 날 며칠을 품어온 감정을 두근거리고 설레는 기분으로 썼다 지웠다 하면서 씁니다. 한자 한 자 채워질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행복으로 부풀어요.
어떤 단어를 골라야 내 마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것인지, 어떤 단어가 더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을지 생각해요. 첫 문장에서 시작해서 마치는 문장으로 끝날 때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은 행복으로 환해집니다. 고심할 때에는 더 좋은 문장을 이끌어내기 위할 때뿐이지 글쓰기 자체는 즐겁고 흥분되는 과정입니다. 글 쓰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나의 모든 영혼이 몰입하고 행복으로 보상받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내재된 보상 가운데 하나는 그가 소네트를 쓰면서 자신의 느낌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정 중 어느 것이 가까이며 어느 것이 진실인지, 그리고 이탈리아어나 영어의 아름다운 점이 무엇인지를 한층 잘 알게 된다.’
위대한 화가 반 고흐 역시 그랬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듯이, 사랑하는 동생에게 편지를 썼어요. 창문 밖으로 희미한 석양과 호리호리한 가로등 기둥과 별 하나를 바라보면서 말이죠.
“정말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모습인지를 너에게 꼭 보여줘야겠어.”
그리고는 ‘값싼 괘선지 공책에다 그 장면을 정말 아름답고 정겹고 작은 소묘로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 편지를 받아 읽은 사람도 큰 위안을 받았겠지만, 정작 누구에게 좋았을까요? 저는 반 고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독했고 외로웠고 천재적이었던 그의 삶을 생각하면 문득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ㅡ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ㅡ 그리운 이여 ,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행복, 유치환>
저는 책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물론 매번 좋은 부분이 자꾸 생깁니다.)
“글쓰기는 물론 시간낭비가 아니다. 느낌과 상상력과 지성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창조적인 일도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다. 나는 바로 이것을 당신에게 온 힘을 다해 확신시키고 싶다. 당신이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배운다. 글쓰기는 당신에게 유익함을 주고, 당신의 이해를 확장시킨다.”
글 쓸 이유는 차고 넘치도록 충분한데 막상 글 쓰는 사람들은 아직 덜 차고 덜 넘치는 것 같아요. 더 차고 넘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을 제대로 쓰면 좋겠습니다.
내 안의 창조적 재능을 이끌어내고, 창조적 힘으로 일상의 행복을 꽃피우며, 무엇보다 가장 자기 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 저는 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