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Jun 11. 2020

추억은 방울방울 비를 타고 온다.

비가 많이 온다. 아주 속이 시원하다.

저녁 무렵부터 갑자기 쏟아지고 잠시 주춤하더니, 밤이 되자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이 비가 어쩜 이렇게 시원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 며칠 새 낮에 해가 뜨겁고 볕이 좋기에 이불을 계속해서 빨고 널어서 말려두었다. 그리고 식구들이 하나씩 차지하고 뽀송뽀송하게 덥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니 다시 습한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햇볕에 그렇게 널고 털어둔 게 마음이 놓여 편안하다. 비가 오는 소리를 들으며 뽀송뽀송한 이불 아래 있으면 잠이 솔솔 온다.

중학교 때 남자 도덕 선생님이 한때 인물값 하셨다면서 여행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여중생들은 비가 온다면서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떼를 썼다. 마지못해 선생님은 잊지 못할 한 장면을 들려주었다.

어느 작은 기차역에 내리면 석류나무가 멋지게 늘어서 있다면서, 석류를 하나 따다가 열매를 으깨어서 엽서 가장자리에 바르면, 그 엽서가 받는 이에게 도착할 때쯤엔 석류향이 은은하게 솔솔 난다고 했다.  심지어 석류를 먹으며 즙을 입술에 묻혀 엽서에 키스도장을 찍으면, 입술 자국이 석류색으로 예쁘게 남겨진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길에서 그녀에게 엽서를 보내고 출발하여 엽서가 도착할 때쯤 그녀 앞에 ‘짠’하고 나타나면 그녀의 눈이 하트가 되면서 석류향에 사랑이 솔솔 커진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개뻥’이었다.

대학 가자마자 석류를 따다가 엽서에 발라보았다. 향이 있기는 개뿔.

손가락에 물들고, 엽서에 물드는 건 맞았다. 내가 기대한 것은 향기였는데.

엽서에 석류향 번지는 것 같은 소리는 이렇게 나의 글에 퍼져가게 되었으니, 먹어보지도 못하고 으깨진 석류의 삶과 죽음은 헛되지 않으리.

어릴 때 우리 집 마당에 석류나무,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나는 무화가가 익기를 기다려 학교 갔다 오면 하나둘씩 까먹는 재미가 있었다.

배추 밭길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한옥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다. 처마 밑에 제비둥지가 있어서 마루엔 하얀 제비 똥이 뚝뚝 떨어져도 아침마다 제비소리에 깨고, 엄마 제비가 새끼 제비를 어떻게 먹이는지 보는 게 좋았다.

마당 안에 우물은 이미 그 집에 이사 갔을 때부터 진즉에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커다란 나무 뚜껑으로 덮여있었다. 그 뚜껑 위에 올라앉아서 석류나무,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하늘도 봤다가 제비도 봤다가 책을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런 행복이 오래가지 않아 전학을 가게 되어서 그 집과도 안녕했지만, 나는 살면서 한 번씩 그때가 기억이 난다. 그 집과 그 풍경은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가장 동화 같고 영화 같은 장면이다.

그래서 도덕 선생님이 석류향 이야기를 해줄 때 내겐 더 특별하게 들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석류를 매일 보면서도 그 생각을 못했었구나 싶어서 기억해두었다가 직접 해보았던 것이었는데... 그런데 그게 개뻥이었다니. 도덕 선생님이 윤리적으로 이렇게 추억을 왜곡시켜도 된단 말인가.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추억이 또 다른 그림으로 새록새록 떠오른다. 석류향 나지 않는 엽서, 제비소리가 들리던 아침, 배추흰나비를 볼 수 있었던 등굣길, 교문 담장 너머 산딸기 따먹던 친구들...

아련한 내 기억 속에 옛 그림처럼 남아있는 추억이기에 더 소중하고 애틋하다. 고이 간직하고 마음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고서는, 서랍 속에서 사탕 하나씩 빼서 먹듯이 꺼내며 살아간다.

얼마 전 트로트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노래 한 곡을 들었다. 가수 임영웅이 부른 “보랏빛 엽서"라는 노래였다.      


보랏빛 엽서에 실려 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보랏빛 엽서라는 노랫말 때문에 노래를 계속 듣게 되었다. 그 노래는 석류향이 스며든 엽서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도덕 선생님의 ‘구라’까지도 향기롭게 만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추억은 향기가 선명하지 않아도 색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진정 추억의 힘이 느껴진다.

추억은 보라색일 수도, 선홍색일 수도, 봄볕에 살랑이던 연녹색 잎일 수도, 처마 밑 제비둥지 같은 갈색일 수도 있다. 그렇게 기억 속의 한 장면들을 나만의 색으로 채워가는 것이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갖는 힘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도덕 선생님의 개뻥이 마냥 원망스럽지 않음은, 추억의 한 갈피를 예쁜 선홍색으로 물들여주셨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추억에 향기가 더해지고, 알알이 영글어가는 석류처럼 내 행복도 커져가고 있다.     


괴테는 “희망은 빈사상태의 인간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제2의 영혼이다”라고 했다.

내겐 추억이 희망일 때가 많다. 추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어디선가 내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비가 내리던 날 손잡고 뛰었던 친구, 교문 앞 떡볶이집에 우리의 용돈을 바치며 매운맛으로 더 매운 수험기간을 보냈던 나날들, 아침마다 학교 갈 때 만나지던 친구,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함께 걸어오던 길, 모든 게 추억 속에 있지만 그때의 퐁신하고 즐거웠던 느낌이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나서 오늘의 나를 위로해준다.

희망과 추억을 일상 속에 켜켜이 넣어두고 인생의 비 오는 밤이면 슬며시 꺼내 들여다본다.

빗소리마저 아름답게 들리게 하는 희망의 얼굴이, 추억의 향기가 그토록 소중한 이유이다.     

작가의 이전글 초롱꽃을 아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