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은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을 읽고 1.
<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에는 저자가 만난 어느 특별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첫 만남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이야기꾼이에요.”
그 말에 저자는 ‘온몸의 솜털이 빠짝 섰음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예전에 책을 한 권 낸 저자임을 밝히며, 글 쓰는 '같은 일'을 했음에 기뻐했다.
책에서 보여지는 저자와 노인의 대화는 흥미진진했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상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중에서 노인이 말한 부분, ‘언어는 일종의 음악,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어디서 구하냐는 질문에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생활에서 얻지요. 난 내가 들었던 소리를 잊지 않아요.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지요. 펜과 종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기록하면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있어요.”
저자는 노인과의 대화에서 그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어휘와 용어에서 인생의 연륜을 느꼈고, 어떤 비법이 있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뛰어난 언어구사력이 있는지 감탄했다.
노인과의 대화는 글을 쓰려는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지식을 넣고 달달 외우기만 해서는 안돼요. 사막의 모래, 엄동설한이나 따뜻한 봄날, 시시각각 지금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껴보려 노력해야 해요. 바람과 당신이 하는 말들을 영혼에 담고 ‘인샬라!’라고 내뱉으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질 거예요.”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이야기를 잘하기 위한 요건 중 첫 번째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남에게 맞아도 말하고 싶고, 큰돈을 밑져도 말하고 싶은 그런 충동 말이죠. 말을 해야 비로소 마음도 몸도 후련해지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해요. 다른 건 모두 부수적이에요.”
이에 저자는 묻는다.
“이야기를 글로 쓰려면 뭐가 더 필요할까요?”
“상상력이 필요해요. 여기 있는 다기들은 말을 못 하지만 특유의 느낌을 손끝으로 전하게 하죠. 이 찻잔 받침대는 아무런 무늬도 장식도 없어요. 하지만 상상해 보면 밋밋한 받침대에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죠. 상상력 외에도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서로 다른 작은 에피소드들을 연결해야 하잖아요. 신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는 발생하지 않은 그 어떤 일도 없어요. 연결하는 방식과 순서만 다를 뿐이죠.”
그 노인은 터키 쿠르드족이었다. '수천 년 동안 티그리스 강에서 소와 양을 방목해 키웠고, 황토의 푸른 풀은 신선한 우유와 치즈가 됐다.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끌어다 키운 밀로는 빵을 만들고 맥주를 빚었다.'
비옥한 땅에서 살았으나 1차 세계대전 후 유럽 열강이 중동의 국경을 지금처럼 분할했을 당시, 쿠르드 사람들은 국가를 세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분열되고 말았다. 때문에 다른 국가의 정책에 제약을 받고, 세상에 없는 듯 살아야 겨우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지경까지 되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터키 동남부의 쿠르드 지역은 1990년대까지 쿠르드족 무장 부대와 정부군이 싸우는 거의 준내전 상황까지 갔었다.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했고, 경제도 타격을 받았다. 또한 수많은 쿠르드 사람들이 국제 난민으로 전락해 외국을 떠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꾼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진정한 이야기꾼일 때 가능하고, 이야기를 사랑할 때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편안한 환경에서 쓰면 쓰고 말면 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대개의 경우 목숨을 걸고 전해야 하는 이야기나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야 하는 재능이 아니다. 글쓰기는 취미이자 습관이고 특정한 사람들이 글을 짓고 말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또는 글을 쓰고 싶은 막연한 바람을 붙잡고 하루하루의 삶을 반복해서 생활해나간다. 여전히 글은 뒤로 밀리고, 굳이 내 앞에 끌어다 놓지 않고도 할 일은 분주하게 많다.
그런데 책을 읽고 노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서는 글 쓰는 것이 좀 더 간절해지고, 감동이 되고, 절박하게 느껴진다.
노인의 삶을 보면서 너무 아프고, 그럼에도 내 앞에서 빛나는 눈으로 말해주는 듯한 음성을 느끼면서 나의 '글쓰는 삶'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뎅베제'였다.
'남에게 맞아도 말하고 싶고, 큰돈을 밑져도 말하고 싶은 그런 충동 말이죠. 말을 해야 비로소 마음도 몸도 후련해지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해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