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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15. 2020

쿠르드족의 목숨보다 깊은 사랑, '뎅베제'

<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을 읽고 2.

https://brunch.co.kr/@uprayer/479


(지난 1편에 이어서...)


저자는 여행 중에 도움을 받았던 지인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 세계에서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은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쿠르드족이라는 사실이었다.'


쿠르드족 중에 '뎅베제'라고 불리는 음유시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가족 전승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조로부터 대대손손 이어간다.  

뎅베제는 쿠르드족이 목숨처럼 지키고자 했던 존재이고 문화이고 유산이다.


'뎅베제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쿠르드 사람들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왔으며 그 시기는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가 지은 서사시 <오디세이>보다도 오래된 시기다. 쿠르드 사람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식견을 넓혔고 이야기를 만드는 예술에 정통했다. 그들은 여러 촌락과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보따리를 안겨 주었다. 그들의 노랫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마음으로 감상했다.'


쿠르드족의 기억 속에 뎅베제는 지금까지도 패스트푸드만큼이나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창과 문을 전부 천으로 꼭꼭 틀어막고 벽에는 담요를 걸어서 소리가 못 나가게 막았어요. 그러고는 작은방에 모두 모여 축음기에서 나오는 뎅베제의 소리를 들었어요. 어린아이들에게는 문 앞에서 놀면서 망을 보라고 했지요. 무슨 일이 있으면 공을 창으로 던져서 알려 주도록 말이에요."


쿠르드족은 뎅베제의 음반이 담긴 상자를 몰래 뚫은 구멍 안에다 숨겨놓았다. 경찰에게 발각될까 봐.

예전에 뎅베제는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걸었다. 맞아서 다리가 잘리거나 독극물로 벙어리가 되는 건 흔한 일일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이름난 뎅베제는 요즘 말로 '우주 대 슈퍼스타'여서 어딜 가든지 수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축제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만드는 역할을 했고, 아무리 큰 무대와 규모 있는 축제라도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면 뎅베제의 노래만이 사람들의 귓가에 남았다. 뎅베제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전 널리 퍼졌던 구술 전승가의 마지막 후예'라 한다. 그들은 위대한 문학가처럼 민족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힘이 있는 존재였다.


<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을 쓴 저자가 우연히 직접 만나서 알게 된 노인의 삶은 이러했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유명한 뎅베제였는데 이 뎅베제 부자에게 적의를 품은 군경이 어느 깊은 밤, 집을 찾아왔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아버지를 뒷마당으로 끌고 가서 거꾸로 매달았다. 경찰들은 아버지 입을 틀어막고는 샌드백을 때리듯 돌아가면서 구타했다.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할 만큼 힘이 빠진 아버지에게 경찰들은 차에서 휘발유를 가져와 아버지 입에 들이붓고는 고개를 들어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했다.

아버지를 지키려고 저항하던 아들에게도 피가 낭자할 정도로 폭력을 가하고 여기저기 뼈를 부러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꼬맹아. 만일 앞으로 노래를 부르면 그다음은 너라는 걸 잊지 마. 우리에게는 라이터도 있어."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났지만, 아들은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고, 아버지는 목소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뎅베제로서, 노래를 위해 산 사람이라 이는 죽은 목숨과 다름없었다. 결국 목숨보다 소중한 목소리를 잃은 아버지는 마지막 노래 한 곡을 부르고는 모래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들은... 성장한 어느 날 다시 경찰에게 잡혀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 안에서 만난 '교사'인 사람에게서 글을 배우고 또 다른 삶의 길에 눈뜨게 된다.

교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문맹이지만 문화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뎅베제는 서민들의 구술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에요. 글을 못 읽기 때문에 온 마음과 지혜로 사라져 가는 노래 예술에 기여할 수 있는 거예요. 서면의 글자들은 사람을 게으르게 해요. 통찰력이 무뎌지죠."


이후 그는 옛날에 아버지가 가르쳐줬던, 살라딘 대제가 십자군에 맞선 장편 서사시를 매일 글로 썼다고 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팠던 부분 중 하나가 다음에 나오는 감옥 씬이다.



고향에 사는 어머니가 멀리서 아들을 보러 왔다. 간수가 감시해서 어머니는 "안녕"이라는 터키어만 해야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터키어였다.

"안녕."

어머니가 말했다.

"안녕."

하산이 말했다.

"안녕."

어머니가 말했다.

"안녕."

하산이 말했다.

"안녕."

어머니가 말했다.

"안녕."

하산이 말했다.

면회가 끝날 때까지 모자는 "안녕"이라는 말만 나눴다. 그러나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터키의 현행 법률은 지금까지도 쿠르드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는 쿠르드어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뎅베제들을 정치적으로 박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뎅베제 한 명을 감금하는 것은 도서관 하나를 폐관하는 것과 같고, 뎅베제 한 명을 처형하는 것은 도서관 하나를 불 질러 없애는 것과 같다는 점 말이다.'


저자의 글을 통에서 나는 뎅베제의 가치와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에서 너무 큰 충격과 아픔을 느꼈다. 이야기꾼이라 스스로를 소개하며,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그 순간을 그렇게 행복해할 뿐인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무차별 폭력과 학대, 짐승보다 못한 처우 속에서 뎅베제는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품고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그렇게 전승되어온 뎅베제의 말과 글이, 노래와 이야기가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말과 글의 힘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을 쓰게 되는 이유.

비록 지금은 누구나 그런 박해를 견디면서까지 글을 쓰진 않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더 쉽게 잊히고 중요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언어가 난무하고 새로 생겨나는 말, 잊혀가는 말도 많지만, 우리의 말과 글에 흐르는 정신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이 우리말을 말살하려 했던 것처럼,

터키는 쿠르드어를 말살하려 했고, 그 중심에 영혼의 축이 되는 '뎅베제'의 존재를 수없이 없애려 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지켜온 뎅베제의 정신 속에 쿠르드족의 영혼은 살아있고, 지금도 쿠르드족은 '뎅베제'를 영혼의 이야기로 향유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뎅베제의 삶을 통해 나와 우리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영혼이 담긴 글, 소중한 것을 지키는 글, 삶과 사람을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글, 그런 글을 지켜가고 있는가. 그런 글을 쓰고 있는가.

지구 어느 편에서 그렇게 간절히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이 시대에는 마음껏 쓸 수 있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안전하다. 이런 시간 속에 살아가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마치 유죄처럼 느껴진다. 나의 자유를 유예하지 않고, 나의 글을 포기하지 않고, 내 스스로 이야기를 땅에 묻지 않고 전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다른 '뎅베제'의 영혼으로서 하고싶은 일이다.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또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다.

(중략)

인간은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마음으로 감동하고, 이전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들을수록 배우는 것도 많아진다. 또한 이야기 속에는 인생의 진리가 숨어있어서 등장인물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에 이입하면서 생명을 대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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