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Jun 18. 2020

우리 집 세 남매의 슬기로운 글쓰기 생활을 위하여

어제 큰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배우는 학생들은 참 복 받은 학생들이야~"

'그래? 그럼 같이 복받자'

"아니, 난 사양할래~~"


한사코 사양하는 큰애는 그래도 잔소리 않겠다는 계약서까지 쓰고 매일 독후감 쓰기로 마음을 얻어냈지만, 둘째, 셋째 아이들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회수 8만번을 가져온 계약서 사건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uprayer/485




오늘부터 초등 3학년인 아들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번도 집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가르친 적은 없었다.

책 읽고 이야기하고 놀았는데 놀다 놀다 요즘 너무 노니까 뭐라도 같이 하면 좋을 거 같아서 수업 모드로 바꿨다. 뭔가를 가르친다기보다, 그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매일 책을 읽고 쓰고 싶은 만큼만 엄마에게 소개하는 글을 적어달라고 했다.

<산호는 식물일까? 동물일까?>     

느낀 점 : 산호가 식물인지 아니면 동물인지 잘 모르겠다.

좋았던 점 : 산호를 직접 찍어서 보여주고 정보도 알려주는 게 좋았다.

좋았던 장면 : 4쪽 등꼬리치가 거꾸로 산호 속에 숨는 장면이 좋았던 것 같다.

재밌었던 장면 : 물고기들이 모여있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이 좋은 점 : 바다 생태계를 알게 해 준다.      


<곰>

좋았던 점 :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정보를 자세하고 유용하게 알려주어서 좋았다.

재미있었던 장면 : 곰이 박사의 곰인형을 가져가는 게 웃기고 재밌었다.

소개해주고 싶은 장면 : 곰이 미끼를 사용하지 않고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소개해주고 싶다.

안타까운 점 : 민간인들은 곰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비버>

좋았던 점 : 비버를 사진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안타까운 점 : 비버가 멸종위기에 처해있고 한국에서 거의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소개해주고 싶은 장면 : 비버가 높은 나뭇가지 탑 위에서 삽을 들고 있는 장면을 소개해주고 싶다.     


<선인장>

좋았던 점 : 선인장 사진을 많이 보고 정보도 많이 얻어 좋았다.

안타까웠던 점 : 물을 많이 못 먹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소개해주고 싶은 장면 : 선인장이 가시가 화려한 종도 있고, 멋을 위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변한 종도 있다는 것을 소개해주고 싶다.



오빠가 글을 쓰니, 일곱 살 막내도 옆에서 글을 적었다. 무엇을 쓰면 좋겠냐고 하기에 쓰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적어왔다.

‘우리의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데 안 낭비한 적도 있다.

야옹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해 소리도 들려왔다.

그런데 두 번 들려왔다. 알아낼 준비되셨나요?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도넛을 먹었다. 실제로였다. 어디서 왔을까?

엄마 생일 때 0월 00일 때 너무 좋았어요. 무지개처럼 기뻐요.

내 생일은 6월 3일이에요. 너무 좋았어요, 엄마처럼요.’


느낀 게 있는데, 엄마가 거실에 나와서 매일 저녁부터 밤까지 글을 쓰니, 아이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밤이 되면 글을 쓰고, 뭔가를 표현하고 기억할 때 글을 쓰고, 뭔가를 설명할 때 글을 써오라고 하면 아이들이 생뚱맞게 받아들이지 않는 점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점들을 앞으로 잘 이용하면서 강화시켜주면, 적어도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일부러 가르치고 어디 가서 배우는 것 보다야 집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이 되니까.

학원 갈래 글 쓸래 했더니 아이들이 글쓰겠다고 서로 먼저 자리 잡고 잡았다.

그만큼 학원 가는 것이 싫은가 보다.

1위 잔소리

2위 학원

3위 글쓰기


보통은 아이들이 3종 세트로 싫어한다. 그런데 잔소리를 하지 않고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글을 흔쾌히 쓴다. 어디까지나 우리 집 아이들의 경우.

그래서 글을 열심히 쓰게 할 생각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렇게 쓰면 알 수 있고, 알아지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싶기도 했다.

말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한데, 이제 우리가 함께 모여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슬기롭게 글쓰기 생활을 해나가면 좋겠다.


"난 인형을 좋아해요, 난 엄마 딸이에요"

"난 바디쿠션도 좋아해요. 까먹지 말아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