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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23. 2020

최대한 빨리 쓰고, 잘 빼기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쓴 일기장엔 이런 내용이 쓰여있었다.

당시에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룸메이트 언니와 같이 살았었다. 언니도 작가여서 우린 같은 일을 하면서 잘 지낼 수 있었다.

어느 날의 기록.


2004년 8월...
나는 직업란에 '방송작가'라고 쓴다. 근데... 사실은 글쓰기 무지무지 싫어하는 사람이다.

언니가 얼마 전 5만 원 줄 테니 촬영 구성안 좀 써달라고 했다.

그 정도로 쓰기 싫다는 뜻이지...

나도 오늘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집에 있다.

원고 쓰기 싫어서 죽으려고 하면서 억지로 쓰고 있다.

정말 한 글자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5만 원 줄 테니 써달라고 하니까 언니가 50만 원을 줘도 쓰기 싫단다.

내가 가끔 글쓰기 싫다고 하면 언니가 그런다.

"같이 죽자. 죽어!"


안 죽고 살아남아서, 살다 보니 계속 글을 써왔고, 쓰다 보니 쓰는 일이 가장 편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 즐길 수도 있는 일, 돈도 벌어다 주는 일이 글 쓰는 일이었다.     

그때는 내가 왜 글 쓰는 것이 싫다고 했을까 싶을 정도로, 짤막하게 대충 끄적거려 놓은 글에서는 당시 상황과 내 마음이 그다지 읽어지지 않는다. 기억도 안나는 나의 못난 마음만이 글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기록은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해서, 짤막한 글 속에서 나의 모습을 유추해보기도 하고, 나의 옛 시절 어느 한 때로 돌아간 듯, 상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브렌다 유랜드는 저서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진실을 쓰고 싶다면, 즉 진정한 느낌을 쓰기를 원한다면, 또한 그것을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중략) 매일 당신의 삶을 일기로 써라.

진실하게, 부주의하게, 되는 대로, 충동적으로, 정직하게 써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렇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꽤 시간이 지나가면 당신은 진정한 자아에 입각해서 편지와 일기와 심지어는 소설을 쓰는 법을 틀림없이 배우게 될 것이다." (174p)


방송작가로 일할 때에는 직업인으로서 하는 일이기에, 방송국에서 습작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잘 못 써도, (아니, 그 시절 대부분은 실수 투성이었을 터) 글을 쓰면 선배들이 '너 습작하니?' , '내가 너 가르쳐가면서 일해야겠니?'라고 했다. 그러면 죄송하다고 하면 '죄송하다고 해결이 되니?' 그러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다고 그러고, 다시 쓴다고 그러면 '시간이 있냐?'라고 그러고, 다음에 제대로 하겠다고 그러면 '말은 누가 못하니?'라고 했다.

나는 방송국 다니면서 시집살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느 시어머니에게 걸리더라도 나는 맵고 짜고 시린 눈물을 다 흘려봤다고 생각했기에, 적어도 매서운 선배보다야 덜 맵게 느껴지리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훈련은 고됐고 너무나 냉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순간이 값진 수업이었다. 글을 쓰는 수업. 글 쓰는 수업은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고, 꾸준히 써야 하고, 기죽지 말고 펴야 한다. 생각이 쪼그라들었을 때는 어떤 글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대본은 그전까지 써왔던 '나의 글쓰기'와는 달라서 '방송용 대본'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전 국민 중 누가 듣더라도 이해되는 글, 초등학생이 들어도, 중학생이 들어도, 가방끈 짧은 사람이 들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글, 말하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리는 글, 방송대본은 '듣는 말'이기 때문에 방송작가가 쓰는 글은 '글'이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방송작가가 쓰는 글은 들을 때에나 읽을 때에나 편하게 들린다.

그때 익힌 글쓰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수없이 소리 내어서 읽어본 결과 나중엔 소리 내어 읽지 않더라도 소리 내어 읽는 듯한 느낌과 템포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눈으로만 보아도 소리 내어 읽을 때처럼 내가 쓴 '말'이 귀에 걸렸다. 글을 눈으로만 보면 듣는 사람들에겐 어려운 말이 된다. 글을 들을 때 쉽게 이해되고 잘 들려야 잘 써진 글이다.

그래서 자신이 쓴 글을 꼭 읽어봐야 한다. 그래야 처음 쓴 글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가능한 한 빨리, 부주의하게, 다시 읽지 말고서, 그 전날 생각났거나 보았거나 느낀 것을 무엇이든지 쓰라고 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보았을 때 '가장 태평하고 자유롭게 쓴 것들이야말로 생동감과 찬란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주 태평해져라. 그때그때 생각난 것들을 최대한 빨리 종이에 써라. 그렇게 한다면 의무적이거나 지루한 것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빠르게 마치 생각을 종이 위에 뱉어내듯 쓴다면 당신은 정말 관심을 갖는 것들만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뛸 것이다. 장황한 설명이나 소심하게 꾸며낸 문구들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글이 늘어지면 좋지 않다. 읽으면서 독자의 마음은 각자의 갈 길로 가기 때문이다.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뛰듯이, 본론을 바로바로 말하고 어쩌면 독자보다 한 템포 더 빨리 나가야 한다. 다음에 이 말이 나오겠다 싶을 때 그 말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표현한다. 그래야 글이 질리지 않고 지겹지 않다. 다음 문장에 어떤 글이 나올지 기대하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흥미를 일으키는 비밀은 단순하다. 독자(혹은 청중)의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아주 빨리 진행시키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는 똑같은 속도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글을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질질 끄는 느낌이 들거든, 그 부분을 삭제하라.


예전에 선배들이 글 쓸 때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가열하게 지워버리는 것을 보았다. 지워지는 게 너무 아까워서 나라도 주워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지우기 아까워요'라고 하면, '지저분해, 빼! 고민할 사이에 시청률 떨어져. 눈이 자꾸만 멈춰지는 곳은 빼버려'라고 했다.

처음 글을 쓸때는 겨우 쓴 게 아까워서 지우기가 참 어렵다. 후배들 글을 봐줄 위치에 있었을때 보면, 유난히 글이 늘지 않는 후배는 고집이 쎘다. 한 번 쓴 글은 절대 건드리지 않고 자꾸만 글에 글을 덧대었다. 그랬더니 글이 무거워지고 지루해졌고 읽기 힘든 글이 되었다.

빼지 않고 꿋꿋하게 집어넣으면 분명 그 자리에서 가독률이 떨어진다. 지루한 글이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선배보다 더 가열하게 지워버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었다.

뺏다는 것은 나만 알 뿐, 글은 여러 말들로 이미 채워져 있었다. 삭제한 자리는 쉼표가 되고, 느낌표가 되고, 물음표가 되었다. 독자가 함께 느끼고, 호흡하고 공감하고,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는 자리. 글에서도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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