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Jun 23. 2020

아이들의 마음을 채우는 것부터가 수업의 시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만나다 보면, 집에서 엄마가 알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

가정에서는 웃지 않는 아이가 수업에 오면 잘 웃는다거나,

무뚝뚝한 아이가 수업에 와서 유난히 말이 많아진다거나,

움츠려있던 아이가 갑자기 폭력적인 성향이 된다거나

활발한 아이가 침착해지는 모습, 그런 것들.

엄마가 알지 못하는 내 아이의 사생활.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수업에 올 때면 배가 헛헛하고 한참 출출할 시간이다.

수업시간 내내 배고프다고 하는 아이를 먹이기가 애매하다. 다른 친구들은 먹기 싫을 수도 있고 못 먹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컵라면을 줄 경우에 '저는 그런 거 안 먹어요~'라고 한다거나,

바나나를 줄 경우에 '저는 엄마가 유기농 과일만 먹여요' 한다거나,

과자를 줄 경우에 '저는 아토피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마트에서 파는 과자는 못 먹어요' 한다거나,

그렇다고 밥을 줄 수도 없고 말이다. 안 주자니 배고파서 힘들어하면, 수업 내내 신경이 쓰인다.

빵을 놓자니 빵도 밀가루이고,

이것저것 따져서 유기농으로 주자니, 내 아이도 그렇게 못 먹이면서 수업 오는 아이들 먹거리까지 챙길 수는 없다.

사탕을 주면 '저는 안 먹어요' 하는 아이가 있고

건빵을 주면, '저는 건빵 싫어해요' 하거나

우유를 주면 '저는 우유 안 먹어요', 두유를 주면 '저는 두유 싫어해요.'

토마토를 주면 '저는 방울토마토만 먹어요' 한다거나

사과를 주면 '맛이 없다'거나,

귤을 주면 '신 것을 싫어한다'거나...

아이들마다 입맛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아토피나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도 있어서 3-4명 아이들 그룹 수업할 때 간식이 참 신경 쓰인다. 간식까지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나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속이 헛헛해서 오는 아이들을 외면하자니, 내 맘이 편치 않아서이다.


예전에 김장철 무렵이어서 김치 만들기를 주제로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아이들이 책에 먹거리가 잔뜩 나오니 너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반찬은 없지만, 냉장고에서 김치 종류를 다 꺼내다가 마침 있었던 밥이랑 맛을 보라고 줬다. 어디까지나 김치를 주제로 한 수업이었기 때문에, 갓김치, 오이소박이, 김장김치, 열무김치, 깍두기를 조금씩 꺼내 준 것이었다. (마침 있었기에 망정...)

그랬더니 아이들 4명이서 밥을 8인분을 먹었다. 말이 8인분이지 8명이 먹어서 8인분이 아니라, 밥솥에 8인분의 밥을 하면 성인 14명 정도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것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30분 만에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랬다.

그 뒤로 아이들이 수업에 오면 자꾸 밥을 찾았다. 수업비 보다 식비가 더 나가게 생겨서, 그리고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기에 차츰 주먹밥에서 과자 정도로 점차 줄여갔지만 한동안 배고파서 밥 찾는 아이들 생각에 간식 고민을 한참 했었다.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간식비 지출이 너무 커져버리면 내게도 부담이 되어서 자제하게 되었다. 그러나 알게 된 것은, 맞벌이로 집에 가면 엄마가 없는 아이들, 그저 컵라면에 물을 부어먹거나 과자를 꺼내먹는 정도로 지내는 아이들이 유독 우리 집에 오면 가기 싫어했다.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면 수업 때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의 입을 열고 글을 쓰게 하려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느꼈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빛을 살피고, 기분을 파악하고, 요즘 고민이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마음이 읽어졌다.

외롭구나.. 슬프구나.. 허전하구나.. 답답하구나... 싫구나..

공부하고 책 보고 글 쓰고 학원 가고 학습지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시간표에 아이들이 많이 지쳐있구나.

그래서 반대로 내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뭐든 덜 시키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수업 오는 아이들에게도 가능한 마음을 보듬어주는 선생이 되었으면 해서 노력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관심은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입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사춘기로 집에서는 점점 방문을 닫고 말문을 닫고 들어갈지언정, 내 수업에 와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고 싶고, 하면 듣고 싶다.

말 한마디라도, 글 한 줄이라도 어떻게 표현해줄까. 어떤 말을 마음에 담고 집에 가게 만들까.

수업을 통해 만나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에 90분밖에 안되는데, 집에 가서 보낼 시간에 아이들이 어떤 감정을 겪을지 내 마음에서 끊어내 지지가 않고 항상 생각이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문을 보면 좋은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