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가 결혼한다고 나를 찾아왔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 생기면 찾아와 소개를 해주겠다고 1년에 한 번씩은 안부전화를 하더니, 1년이 10번 지나기 전에 정말 찾아왔다.
1년이 9번 지나갈 동안에는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왔다, 같이.
그리고 그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선보듯이, 아니, 친정아버지가 사위 선보듯이, 나는 아끼는 후배의 엄마 아빠 같은 마음으로 예비신랑을 살펴보았다.
어딘지 어둡게 느껴지는 그늘진 표정과 말이 뚝뚝 끊어지는 대답, 마주 볼 때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밥 먹을 때 주변 사람을 살피지 않는 태도 등도 걱정스러웠다. 이거, 살다 보면 계속 드러날 문제인데 싶었다.
(이혼사유는 될 수 없으나, 함께 살아가기에 참 재미없고 팍팍한 사유로는 충분하다.)
얘기를 하던 중에 한 가지, 한 번도 선물을 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불현듯, 언젠가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결혼 전에 안 하는 사람은 결혼해서도 안 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 애교가 없거나, 배려가 없거나, 선물이 없거나, 노동(?)이 없다면, 결혼해서도 없을 확률은 더 크다고 했다.
나의 경험과 나의 선입견에 고리타분한 편견과 판단력까지 다 끌어와서라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라도 요모조모 다 뜯어보려 했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후배의 얼굴에 드러나는 생기 앞에서 나는 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날 잡고 집 사고 차사고 청첩장까지 다 찍었는데 말 그대로 ‘인사’나 하자고 와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그 덕에 얼굴이나 봤으니 됐다.
이제는 그저 어떻게든 잘살라고 행운을 빌어주고 행복을 기원하고, 앞으로 펼쳐질 결혼생활을 응원해줄 수밖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후배이지만, 동생처럼 아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앞에서 차마 내가 이혼했음을 말하지도 못했다.
타이밍이 참 애매하게 되어서 ‘지나가는 길에’ 마침 시간이 맞아 들른 만남에서, 정해진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나눌 대화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둘 뿐만이 아니라, ‘예비남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앉아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불안은 나의 몫. 후배는 행복할 것이다. 백년해로하고 알콩달콩 콩 볶으면서 사랑이 샘솟는 가정을 이루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토끼 같은 아이들 이쁘게 낳아서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의미 있는 소중한 가정이 될 것이다. 주문을 외워본다.
착하디 착한 내 후배. 배려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고 센스와 예의는 랜덤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하고 따뜻하고 부지런하고 애교 있고 남 주기 아까운 내 후배.
누구와 결혼하나, 언제 시집가나 궁금했는데 그날이 이제 다가오고 있다. 보낼 때는 잘 보내줘야지. 내가 데리고 살 것도 아니면서... 자기 인생이니 잘 살아가겠지 생각하고 행복만을 빌어주고 싶다.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홀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4명밖에 안 되는 시누이들이 언니처럼 잘 챙겨줄 것이다. 10명의 조카들이 번갈아 오면서 밥 달라고도 안 하고 용돈 달라고도 안 할 것이다. 남편은 본가에 하는 만큼 처가에도 잘할 것이다. 비록 후배의 돈으로 전부 대출받아 집을 겨우 마련했지만, 살면서는 하나하나 갚아가면서 후배를 위해줄 것이다.시댁 형제중에 일하는 사람은 후배의 예비남편 밖에 없다고하나, 곧 일자리도 찾고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좋은 아주버님이 되어주실 것이다.
오직 한식만을 먹고, 외식을 싫어하지만, 아내를 위해서 간간히 외식도 해가면서 서툰 솜씨로 된장국이라도 한 번 끓여줄 것이다. 애들을 싫어한다지만 막상 자기 자식 태어나면 안고 비비고 어쩔 줄 몰라하는 딸바보, 아들바보가 될 것이다. 취미는 잠자기, 특기는 게임하기여도 주말에는 잠 덜 자고 게임도 덜하면서 아내와의 시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잘 살고 잘 먹고 잘 자고, 그래서 어느 날 와서 결혼 정말 잘했다고, 결혼하길 잘했다고 얘기해주면 좋겠다. 왜 말리지 않았냐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힘들게 토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부디부디 오래오래 잘살기를.
고마운 것 한가지는, 그나마 내가 후배에게 크진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축의금을 줄 수 있을 때 와준 것.
지금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인 것만 같다.
“나한테 결혼은 정말 신성한 거야. 그리고 반대로 이혼은 신성 모독이지. 나는 그렇게 교육받았어. 하지만.. (중략) 내가 받은 교육과 내가 믿는 종교가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기 때문만은 아니야. 나는 여자이며, 나한테는 이혼도 몸과 영혼을 하나로 묶는 교회에서의 결혼식과 혼인신고처럼 공허한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야. 이혼과 동시에 두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떨어져 나가서 갈라지는 거야.”
-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이혼하지 말고 잘살아. 만약에...는 다음에 생각하고 일단 잘살자.
결혼을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