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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23. 2020

bad news? good news?

어떤 것부터 들으실래요?

김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이름>이란 책에 저자가 등단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날에 대한 이야기가 글로 쓰여있다.

저자는 당시 대학교 컴퓨터실에서 전화로 등단 소식을 들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재주라도 세 번 넘고 싶었지만 컴퓨터실에 붙은 '정숙'이란 단어를 보고 겨우 참았다'라고 표현했다.

그때 발산하지 못한 기쁨이 멍울져 지금도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에, 증상을 들은 선배는 화병과 비슷하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밤마다 세 번 웃으면 낫는다'라고.


김애란 작가의 글에는 웃음과 위트, 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설레면서도 우지끈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내가 흠모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당시 등단 소식을 들었던 저자의 어머니는 노래방에 계셨다고 한다. 저자는 조용한 학교 컴퓨터실에 있었기에 마음껏 소리 내어 표현하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시끄러운 노래방에 있었기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위트, 그런 비교, 놓치지 않고 심어놓은 크고 작은 서사는 저자의 글을 풍부하게 하고 쉽게 흉내 내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당선 사실을 종일 숨겼다. 말하고 나면 뭔가 훼손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세상 모든 이들에게 떠벌리고 싶었다. 비밀을 가진 자의 자부와 수치, 떨림과 번뇌로 얼굴이 핼쑥해질 즈음 나는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내 기분이 요즘 그렇다.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는데 동네방네 기쁘게 떠들고 다니기에는 감추고 싶고, 감추자니 누군가에겐 알리고 싶은 마음, 어쩌면 다른 작가들도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그 마음 같기도 하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했다.

"내게 등단 소식이 소중했던 건 그게 단순히 좋은 소식이어서가 아니라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과 훨씬 나쁜 소식 뒤 도착한 좋은 소식이 어서였다."


내게도 그렇게 다가온 소식이었다. 두 번째 책을 계약할 때의 상황, 그리고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상황.

작가는 책을 낼 때 세 번 떨린다.

계약합시다! 하고 구두계약이 될 때.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아! 계약했다 싶을 때.

그리고 출간되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런데 지나고보니 더 떨리는 것은 막상 그 책이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전해질지 그 소식을 혼자서 기다리고 상상할 때이다.

최근에 지인이 물었다. "굿뉴스와 베드 뉴스가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들으실래요?"

한동안 베드 뉴스가 내 온 주변을 감싸는 듯한 터널을 지나왔기에 베드 뉴스에는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베드 뉴스는 그저 뉴스일 뿐, 베드로 느낀다고 해서 달라지는 상황이 아닐 거면, 베드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베드 뉴스부터 듣겠다고 했다. 굿뉴스야 언제 들어도 굿뉴스이니, 바로 당장 듣지 않는다고 바뀔 상황이 아닐 거면, 베드 뉴스부터 들은 뒤에 들어도 기쁨은 배가 될 것이므로.

그래서 베드 뉴스부터 듣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뉴스부터 듣기 원할까.

지인의 말로는, 대게 그렇게 물으면 굿뉴스부터 듣겠다고 한다 했다.

내 경우는 언제나 베드 뉴스부터이다.


주변에서 베드 뉴스가 쏙쏙 들려온다. 나는 헤벌쭉 웃음이 나는데, 웃을수가 없다.

"굿뉴스부터 들으실래요? 베드뉴스부터 들으실래요?"

어쩌면 이 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듣게 될 무한 반복될 질문이기도 하다.

내 삶이 던져주는 질문에 귀기울이며, 내 마음에 귀기울이며, 내 삶에 알맞은 속도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세상을 향해 답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나의 걸음이 언제나 굿뉴스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 역시 이왕이면 좀 더 희망적이고 따뜻한 뉴스를 전하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피할 수 없을바에야 즐길 순 없어도, 즐기기 싫은 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요리조리 잘 피해가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피구왕이 되기를.


내 삶의 알맞은 걸음은 내가 정하면서,

나의 걸음이 누군가가 걸어갈 발자욱이 되기를,

또 누군가의 발자욱을 내가 따라 갈 수 있기를,

우리의 발자욱이 모여서 넓고 커다란 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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