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 다리가 더 가늘어지고, 아이의 손이 더 커지게 되면, 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고, 내 아이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해야지, 건강해야지... 하면서 잠이 들었다.
고통 중에도 아이의 따듯하고 조그만 손이 나를 잠시나마 쉬게 했다.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할머니가 되어 생각해보면 헛웃음만 짓게 될 것들을 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보채고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나의 모습을 한 그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비로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하는 말이 벌써 들리는 듯하다.
"하느님, 그때 그 기도, 들어주시지 않길 참 잘하셨어요."
- <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곽세라) 중에서.
왜 일어나는 일인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들, 왜 아픈지, 왜 잘 안되는지, 왜 자꾸 실패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일 때 우리는 자신을 원망하거나, 타인을 원망하거나, 세상을 향해, 혹은 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책에서 찾은 해답은 이 부분이다.
"파울로, 신께 답을 달라고 부르짖지 마라. 지금은 답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니라 문제를 이해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지 않니? 네게 내어주신 문제를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렴."
사람들은 오로지 햇빛을 더 달라고, 더 큰 꽃을 피우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만, 그 나무를 진정 보살피시는 분은 우리가 뿌리를 내리도록 기다려주신다는 것이다.
장미는 꺾어질지언정, 해마다 피고 또 피어난다. 그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 장미를 통해 느껴지는 많은 아름다움에는 그 속에 '생명'이 있어서가 아닐까.
꺾어졌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 피어날 더 싱그러운 장미를 기대하며, 꽃을 보듯 나를 보기로 한다.
언젠가는 나도 꺾어진 장미꽃처럼 시들어가겠지만 그렇게 지고, 피고 하는 인생길 위에서 나의 향기를 전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것이다.
인생이 주는 숙제 같은 질문과 문제들 앞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 나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오래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