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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l 29. 2020

우리의 인생길 위에 피어나는 수많은 장미들을 보며

뇌수막염인 줄도 모르고, 그저 감기몸살 정도인 줄 알고 주말 동안 집에서 앓았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신음 중일 때, 일곱 살인 막내가 다가와 물었다.

"엄마, 외할머니는 왜 오시지 않는 거야? 엄마가 아프니까 와달라고 하면 안 돼?"

"지금 할머니도 몸이 약하셔서 와주시긴 힘들어, 엄마가 병원 가서 치료받고 얼른 나을게. 이젠 힘들어도 앞으로는 우리끼리 도와주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엄마 아플 때 잘 놀고 있으면 그게 엄마에게 힘이 될 것 같아."

그랬더니 막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책도 잘 읽고 그림도 혼자서 잘 그리고, 잘 노니까 엄마에게 힘이 되는 거야. 그래도 엄마가 안 아픈 게 좋아.' 그리고 이어서...


"아, 알겠다. 할머니들은 나이 많아져서 몸이 약해지니까, 그렇게 꺾어진 장미꽃처럼 걷는 거구나~."


꺾어진 장미꽃처럼...


우린 모두 장미꽃처럼 화려하고 싱그러운 한 철이 있었다.

보드랍고 향기로운 붉은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도 그리 영롱할 수가 없고, 향기는 거리를 물들이고도 남았다.

뜨거운 여름이면 아파트 산책길을 따라 피어나는 들장미들이 장관을 이루고, 그 길을 따라서 아이들과 함께 걷곤 했다.

어느 날, 길에 꺾어진 채로 버려진 장미꽃을 보았었다. 막내가 4살쯤이었을 때,

'엄마, 장미가 왜 길에 떨어져 있어?'라고 묻기에, '누가 꺾어서 향기를 맡아보고는 떨어트리고 갔나 봐'라고 했었다.

그리고 우린 '장미꽃이 꺾어지고 버려져서 너무 아프겠다'하고 위로하고는 친구들 사이에 꽂아주고 지나가곤 했었다.

꺾어진 장미꽃에서 할머니의 연약함을 떠올린 건지, 할머니 육신의 연약함에서 꺾어진 장미꽃을 떠올린 건지,

아이는 해맑게 말하고는 그 작은 손으로 계속해서 나의 팔, 다리를 주물렀다.

언젠가 내 다리가 더 가늘어지고, 아이의 손이 더 커지게 되면, 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고, 내 아이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해야지, 건강해야지... 하면서 잠이 들었다.

고통 중에도 아이의 따듯하고 조그만 손이 나를 잠시나마 쉬게 했다.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할머니가 되어 생각해보면 헛웃음만 짓게 될 것들을 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보채고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나의 모습을 한 그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비로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하는 말이 벌써 들리는 듯하다.

"하느님, 그때 그 기도, 들어주시지 않길 참 잘하셨어요."

- <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곽세라) 중에서.



왜 일어나는 일인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들, 왜 아픈지, 왜 잘 안되는지, 왜 자꾸 실패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일 때 우리는 자신을 원망하거나, 타인을 원망하거나, 세상을 향해, 혹은 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책에서 찾은 해답은 이 부분이다.

"파울로, 신께 답을 달라고 부르짖지 마라. 지금은 답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니라 문제를 이해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지 않니? 네게 내어주신 문제를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렴."


사람들은 오로지 햇빛을 더 달라고, 더 큰 꽃을 피우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만, 그 나무를 진정 보살피시는 분은 우리가 뿌리를 내리도록 기다려주신다는 것이다.

장미는 꺾어질지언정, 해마다 피고 또 피어난다. 그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 장미를 통해 느껴지는 많은 아름다움에는 그 속에 '생명'이 있어서가 아닐까.

꺾어졌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 피어날 더 싱그러운 장미를 기대하며, 꽃을 보듯 나를 보기로 한다.

언젠가는 나도 꺾어진 장미꽃처럼 시들어가겠지만 그렇게 지고, 피고 하는 인생길 위에서 나의 향기를 전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것이다.


인생이 주는 숙제 같은 질문과 문제들 앞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 나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오래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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