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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l 29. 2020

이름에 담긴 치유의 힘을 느껴본 시간

뇌수막염으로 인한 11일 동안의 입원생활.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며 입원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퇴원하기까지 하루하루가 참 좋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건강을 체크하는 손길과,

그때마다 몇 번씩 나의 이름 세 글자를 확인하는 음성을 통해서 나는 나를 매일매일 인식했다.

일을 하건, 지인들과 만나건, 공식적인 자리에 서건, 본명으로 불릴 일이 많지 않다.

일할 때는 선생님, 교회에선 집사님, 글쓸때는 작가님, 집에서는 엄마, 그 외에는 호칭을 생략하고 부르거나, 누구의 엄마로 불린다.

그렇게 꽤 오래 살다 보면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스스로에게서도 잊혀간다.

그런데 병원에서 11일의 입원 기간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이름을 확인받았다. 하루에 최소 10번 이상 불렸으니, 11일이란 기간에 걸쳐 최소 100번 이상 내 이름이 불린 셈이다.

그 하루하루가 쌓이고 지나 보니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다른 모든 가지는 다 쳐지고, 내 이름 세 글자만 몸통으로 남는 상태.

퇴원 후 나는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 꽉 차게 충만한 상태로 치유받은 느낌이다.

이름에 담긴 치유의 힘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 이름을 짓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쁘게 고심했을, 부모님의 자식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날들 중에 불려졌을 이름이기도 하고

중요한 시기마다 나는 내 이름 세 글자를 종이 위에 써 내려갔다.

학교 시험지에, 혼인신고서에, 이혼신고서에도.

친구들은 내 이름을 떠올려 볼 때에 나를 떠올릴 것이고 나와의 추억과 나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낸다. 마치 화선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자연스럽고 그윽하게.

합격통지서에 새겨진 이름을 보았을 때,

장학생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방송 스크롤에 내 이름이 지나갈 때,

수백 장 청첩장에 새겨져 있던 내 이름을 보았을 때,

나는 내 이름을 한 자 한 자 꼭꼭 씹어먹듯 확인했었다.

누구의 엄마로 불릴 때, 보호자로서 이름을 적을 때에는 설레었다.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유치원에 갈 때, 초등학교에 갈 때, 중학교에 갈 때.

아이가 병원에 입원할 때 보호자로서 내 이름을 적을 때에는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언젠가 도종환 시인의 인터뷰에서 보았다.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길, 편지를 쓸 때는 맨 앞에 먼저 계절 인사를 쓰고, 상대방 안부를 물은 뒤에 내 안부를 이야기하는 순서로 써야 한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순서 그대로 계절 인사 몇 줄을 쓰기 위해서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뭇잎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별이 떴는지,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쌓여서 그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편지를 쓴 것이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했다. 습관은 그렇듯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힘이 있다.


나는 이제 내 이름에 안부를 묻겠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매일 만나는 바람처럼, 공기처럼, 햇빛처럼 나의 이름을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불러주는 습관이 쌓이면 그것이 나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주변까지 돌볼 여력이 커질 것이다.


세상이 각박하게 여겨지는 것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아팠던 경험은 내게 요한 의미를 남겼다.

입원으로 인해 세아이만 두고 집을 비워야 했던 기간, 지인들은 자체 연락망을 만들어 2인 1조로 우리 집을 방문해서 살림과 아이들의 끼니를 챙겼다. 밤이고 낮이고 그들의 헌신은 위대함마저 느끼게 했다.

그 배려와 섬김은 가히 놀라운 인류애를 보여주었다.

말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었던 사랑이었다.

내가 없을 때에 더 크게 채워준 사랑으로 인해 엄마의 부재시에도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엄마가 있을 때보다 더 큰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을 것이다.

오시는 분마다 진정으로 우리 가족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무릎을 낮추었다.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아이들의 안위를 생각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내 아이 보살피듯 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배려를 했던가.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

삶을 증명하고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름이다.

누가 어떻게 살다 갔는지는 이름 한마디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이제 내게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소중히 마음에 새긴다. 잊히지 않을 아름답고 감사한 이름들.

신문을 보면 오르내리는 이름들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듯이, 우리 삶과 생활 속에서 이름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름'은 순 우리말로서 가장 한국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나무 위키를 참조하면, 이름은 '무엇이라고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 '이르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나를 가리키는 이름, 상대를 지칭하는 말로서 이름은 분명한 힘을 갖는다.

그 고유한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가장 나다운 때이다.

대체 불가한 존재로서 나만의 사유. 나만의 행동이 나답기를. 이름을 통해 매번 내가 새로워지고 자정력을 갖춰 살아가기를 꿈꾼다.

나라서 좋을 이유가 내 이름에 있다.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 나를 잃지 않고 나를 가장 나답게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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