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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May 07. 2019

닫힌 문을 보며...

만약 그가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행동은 달라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니, 많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면, 길을 가다쓰레기를 버리려 해도 함부로 버리기가 멈칫해지는 법이다.

길가다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발견한다고 해도, 줍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집안일'이기에 경찰들이 온다고 해도 어떤 도움을 줄 수가 없다.

그 '집안일'에 대해 누군가 점수를 매긴다거나, 경제적인 타격이 생긴다거나, 회사에서 평가를 받는다거나, 어떤 식으로는 본인의 생활에 영향을 줄 무언가가 생긴다면, 행동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굳건한 철문으로 된 현관을 닫고 들어오면 집안에서 내가 욕 한번 한다고 해서, 내가 뭐하나 집어던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집안에는 잘못을 꾸짖을 어른이 없고, 가타부타 판결한 사람이 없으며, 그렇기에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약한 사람은 때리면 맞아야 한다. 도리 없다. 내가 태권도 유단자도 아니고 성인 남자가 맘먹고 부리는 폭력에 어떻게 당하겠는가.

그런데 맞은 사람이 어디 멍들지 않고 찢어지지 않고서는 안 때렸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법이 그렇다.

그리고 물리적인 폭행만 폭력이 아니다. 말로 하는 폭행도 폭력이다. 그의 언어폭력은 갈수록 심해져가고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샌드백이 되는 아내는 속으로 골병이 들고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그가 그릇을 내던진 자리가 움푹 파였다. 내 맘 같다. by. 아인잠


식탁에 흉터가 생겼다.

남편이 화가 나서 식탁을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내리쳤는데 그릇은 튕겨나가고 식탁엔 흉이 남았다.

아이들은 식탁에 앉을 때마다 흉이 남은 자리를 컵을 슬그머니 놓아 가린다.


만만한 게 집안 살림이다.

이 식탁도 내가 벌어 내가 산 것인데... 맘이 아프다.


나는 우리 집 현관문이 때로는 무섭다.

그렇게 굳건하고 튼튼하고 반듯한 철문이 나를 가두는 감옥 같다. 집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문은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그대로 있다. 누군가 제발 저 문을 열고 뛰어들어와서 우리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호통을 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다. 또는 내가 그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수많은 밤, 수없이 많은 생각들... 뛰쳐나간 적도 물론 있지만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 남매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은 죄가 없다. 어른이 잘못이다.

참으로 무심하고 견고한 그 문은 우리 집을 지키는 성벽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감옥 같다.

그래서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문을 꼭 쳐다본다. 마음으로 기도한다.

'제발 나에게 자유의 문이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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