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 텔레헨의 소설, <잘 지내니>를 읽고...
톤 텔레헨의 소설, <잘 지내니>에 나오는 이야기.
생일을 맞은 사자가 귀뚜라미로부터 슬픔이 가득 담긴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사자는 선물 상자를 풀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코, 실수했구나……’ 귀뚜라미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사자는 슬픔 상자를 열고 펑펑 울면서 생일잔치에 찾아온 손님들어게 돌아가라고 했다. 자신의 생일 따윈 잊어버리라고 했다.
원래 귀뚜라미가 사자에게 선물하려던 상자는 반짝이는 초록 외투가 들어있는 상자였으나, 실수로 슬픔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사자에게 준 것이었다.
귀뚜라미는 슬퍼하는 사자를 떠올리며 그나마 분노 상자를 주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분노 상자도 버리려던 것인데 실수로 사자에게 슬픔 상자가 아닌 분노 상자를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귀뚜라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래된 분노 상자를 가져와 열고, 그 속에 담긴 분노를 수천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 하나하나 땅에 묻었다. 만약 누군가 그 분노 조각을 발견하더라도 조금은 화가 날 수 있겠지만, 결코 크게 분노하거나 격노하지는 않도록. - 참고 : <잘 지내니>. 톤 텔레헨, 아르테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나와, 나의 남편이 떠올랐다.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원래 남편에게 가려던 것은 멋진 초록색 외투가 든 선물상자였는데, 잘못해서 분노가 담긴 상자를 연 것이 아니었을까.
결혼을 통해 진정한 행복, 아름다운 가족, 싱그러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은 내 꿈이 들어있던 선물상자는 어느 강물에 흘러가 버리고, 남편은 어디선가 떠내려온 분노의 상자를 잘못 열고 그렇게 자신조차 추스를 수 없을 만큼 강한 분노를 쏟아내며 마음으로는 괴로워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또 어느 세월 속에서 내가 연 것은 슬픔 상자가 아니었을까. 어떤 운명의 장난이 내게 올 멋진 붉은 코트가 들어있는 상자가 아니라, 슬픔이 가득한 상자를 전해주어서 나는 그만 주저앉아 울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한 편으로는 이젠 운명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상자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남편이 분노 조각을 발견하더라도 조금은 화가 날 수 있겠지만, 결코 크게 분노하거나 격노하지는 않도록.
내가 슬픔 조각을 발견하더라도 조금은 눈물겨울 수 있겠지만 결코 절망하거나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그러나 나는 이제 생으로부터 거저 떠내려오는 선물상자는 열고 싶지 않다. 내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찾아서 가꿔서 만들고, 더 크게 키워서 나누어주는 삶을 살고 싶다.
분노와 슬픔은 어쩌면 한 뿌리에서 자라나 다른 갈래로 나뉜 줄기 인지도 모르겠다.
분노가 치솟을 때 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는 그 분노 밑바닥에는 어쩌면 극한의 슬픔이 이글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극한의 슬픔에서 분노를 느꼈다. 극한의 분노에서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내 의지가 분노를 슬픔으로 잠재웠고, 슬픔은 분노를 감싸 안고 내 안에서 나뒹굴었다.
이제는 잘못 건네어진 상자임을 알겠다. 어쩌면 애초에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나는 이미 열었고, 이제 슬픔을 멈추고 상자를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귀뚜라미처럼, 이제 집에 돌아와 오래된 슬픔 상자를 가져와 열고, 그 속에 담긴 슬픔을 수천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 하나하나 땅에 묻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 슬픔 조각을 발견하더라도 조금은 눈물 겨울 수 있겠지만, 결코 절망하거나 슬픔에 잠식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