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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노부부의 모습

by 아인잠

비가 스산하게도 내리는 5월의 마지막 주에, 등이 굽은 할머니께서 등이 굽은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고 계셨다.

앞서가자니 길이 좁고, 따라가자니 약속시간이 촉박하지만, 그래도 그 길을 따라 두 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함께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귀에 대고 차근차근 당부하셨다.

“가면 시키는 데로 가만히 앉아있고, 내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버럭 역정을 내시며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셨다.

“크게 귀에다 대고 얘기를 해야지, 무슨 비밀이라고 그렇게 못 알아듣게 얘기해”

소리를 냅다 지른 할아버지로 인해 무안해지신 할머니께서 이번엔 조금 더 크게 얘기하셨다.

“그래, 비밀이다 비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그러자 분에 못 이겨 할아버지께서는 그 후로도 할머니께 뭐라 뭐라 하셨고, 할머니께서도 지지 않으시고 함께 싸우셨다.

그리고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 오르는데 수 분이 걸려서 겨우 발걸음을 떼시는 할아버지 뒤를 따라, 승객 여러 명이 한 명씩 차에 올랐다.

우리는 한 방향으로 가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했을 터.

우리의 살아온 삶이 다르고, 가는 목적지가 다르지만, 우선은 같은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두 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디로 가시는 걸까,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신 걸까, 두 분은 어떻게 생활하실까,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을까... 결혼한지는 몇 년쯤 되셨을까, 자제분들은 몇이나 있을까...

두 어르신과는 버스에서 내릴 때도 같은 곳에서 내렸다. 여전히 할머니에 의지해서 걸음을 옮기시면서도 할아버지는 당당했고, 조금도 굽힘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할아버지에게 조금 더 큰 소리로 얘기를 하셨고, 할아버지는 묵묵히 듣고 계셨다.

뒤 따라 걸으며 신기한 모습을 발견했다.

길 중간중간 빗물이 고인 곳으로 할아버지 당신께서 걸으시기 위해, 할머니를 웅덩이 옆길로 밀어내시는 것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그렇게 걷고 계셨다.

좁은 인도 위에 나는 또 두 분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앞서 가시는 두 분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셨고 살아가실 두 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불쑥 성질을 내고 다투더라도 서로를 가장 잘 알고, 그렇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에 고단한 결혼생활일지라도 일평생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내는 '남편이 내 마음을 알게 되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가 화를 내지 않으면 다가갈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남편은 아무 일 없는 듯이 평온하게 지낸다. 아내 마음속에서 핵폭탄이 제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정서적인 단절은 부부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중략)

부부는 평생 동안 싸울 기회에 맞닥뜨린다. 자녀는 말썽을 일으키고 시댁과 처가가 부부를 속상하게 할 수도 있다. 배우자의 성격과 습관이 거슬리기도 한다. 특히 지치고 힘들 때는 예민해져서 작은 일 가지고 다투기도 한다. 부부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은 부부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싸움의 강도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부부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당신 힘들었겠다(박성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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