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말하는 것이 좋아요.
24살, 대학생활중 1년간의 휴학기간도 있었지만 4학년 2학기 재학 중 취업이 되어 이른 나이에 취업을 했다. 24살의 나이에 들어간 회시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은 없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되게 많았다. 또래들처럼 목표나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취업을 해보고 싶단 마음으로 전공 관련 자격증을 딴 내가 그냥 자격증만 살려 취업을 하게 된 곳. 바로 건설회사였다.
20대 중반의 나는 안전모를 쓰고 안전벨트를 매고, 각반을 채우고 안전화를 신으며 매일 새벽 7시 아침체조를 했다. T.B.M시간에 늦어서는 안 됐다. 괜히 늦었다간 '여자가 그럼 그렇지 뭐'라는 이야기만 들을게 분명했다. '여자라서 그래.'라는 소리를 그만 듣고 싶어서, 욕먹는 게 싫어서 버둥대던 그 시절. 멘탈이 좋지 않은 편인 나는 욕먹기 싫어서 버둥대다가 동기들 중 가장 빠르게 직장을 그만뒀다. 지금에서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2년을 채 버티지 못했던 나의 첫 직장생활은 나에게 굉장한 부끄러운 과거였다.
그래도 나름 그곳에서 많은 인연들이 생겨, 소중한 친구들도 생기고 남자친구도 만들었고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으며, 지금의 남편이 된 그는 아직도 그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결혼을 하고나서야 나의 부끄러운 과거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고, 힘들기만 했었던 과거는 나름대로 미화가 되어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곳이 되었다.
어떻게 미화가 됐냐면
그렇게 울면서 퇴사를 했으면서
어린 나에게 저축이 뭔지 알려주었고,
재테크를 가르쳐 준 곳이 된거다.
당시 내가 일하던 현장의 분양가는 2억 5천만 원. 분명 2억 5천으로 시작했는데, 토공사를 하고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그 짧은 시간에 프리미엄 1억이 붙었다. 오른 집값은 직원들의 화두거리였고 회사에서 부장님들은 나에게 돈 모아서 얼른 집이나 사라고 하시며 본인들의 부동산 투자썰들을 심심할 때마다 풀기 시작하셨다. 매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나는 조용히 도서관에 가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막 취업한 20대 중반의 내가 무슨 돈이 있겠다고 투자를 하겠는가. 하지만, 언젠가 나도 부장님들처럼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투자를 하고 말 거라는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 목표의식은 집만 사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믿음을 만들어 주게 했다.
그리고 그쯤부터 시작되었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코스에 넣기 시작한 부동산 임장과
시간이 될때마다 엄마를 데리고 다니던 모델하우스 투어.
물론 난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모델하우스를 다니기 시작하며 나름의 분석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어떤 모델하우스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어떤 곳은 휑하니 조용하기만 했었는데, 그 이유가 뭔지를 찾기 시작했고 '아 여기는 초등학교가 있구나', '이 아파트는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구나', '4BAY 아파트가 인기가 많구나.', ' 지하철 역이 있구나.', '아 이 동네는 그동안 신축이 들어선 적이 없구나.' 등의 나름대로의 분석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27살의 나는 결혼을 하며 남편에게 다짐했다.
우리가 30살이 되기 전에 난 꼭 집을 살 거야.
목표를 이뤘냐고? 이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우리 부부는 재테크라는 걸 해보았고, 지금도 꾸준히 공부 중에 있다.
누가 들으면 재테크에 엄청난 성공을 해서 대단한 부자가 된 줄 알겠지만,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쉽게도 우린 대단한 역세권 아파트도 아니고, 바다 뷰가 보이는 집도 가지지 않았으며, 평지에 초품아인 아파트도 아닌 곳에 그냥 살고 있다. 하지만, 재테크라는 걸 해본 경험은 아 외벌이로도 충분히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만들어주었다.
'자신감' 하나로 결혼을 했었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랬다.
'자신감'이 있었으니깐 아이를 낳은거다.
좋게 말해서 자신감이지. 어떻게 보면 깡다구 하나 가진 거다.
분명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우리 부부였는데, 육아를 시작하며 점점 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현실이라는 세계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노후가 우리의 미래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미래에 얼마가 있어야 되는 건지. 어느 정도의 돈을 벌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언제 집을 사야 적당할지. 돈은 얼마나 저축을 해야 하는 건지. 그냥 많이 모으기만 하면 되는 건지.
그래서, 일단 우리는 나가서 일을 한 거다. 돈을 벌 수 있을 때 빠짝 벌어야 그나마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하며.
근데, 뭔가 이상했다. 우리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아이를 낳았는데, 둘 다 아이를 키우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나는 그냥 돈만 벌고 있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아이를 키우지 못한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날 더 혹사시키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부모님에게 맡기며 살고 있는데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지', '회사에서 인정이라도 받아야지'하며 원치 않던 것들을 얻어 내려했던 직장 생활.
내가 이렇게까지 일하고 싶어 했나 싶었다. 나의 1순위가 직장이었나 싶었다. 그럴 거면 아마 나는 취준생시절부터 가고 싶은 기업 하나는 품 안에 품고 있어야 했고 일을 하고 스펙을 쌓으면서 행복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뭐 어디서도 행복하지가 않아.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아.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나의 자신감은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었는데.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차근차근 우리 집 재정상태를 확인해 보고, 미래를 위해 얼마씩을 모아야 하며, 어떤 투자들을 준비해야 할까를 고민해보자. 그리고 나는 20대 중반 부동산이란 걸 처음 알았을 때의 나처럼, 다시 재테크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파이어족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미친 듯이 파이어족 관련 책들을 읽던 나는 10권이 넘어섰을 때쯤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시간부자가 된 그들의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돈이 얼만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야 미래가 두렵지 않고, 파이어 할 수 있다는 것-
아, 깨달았다.
다시 집 나갔던 자신감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
27살의 나이에 다짐했듯이 난 또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40이 되기 전에 난 꼭 너에게 안정된 노후를 선물해 줄 거야.
어떻게 이룰 거냐고?
'깡다구', '자신감'
이거면 되지 않을까?
그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줬다.
이제 이 용기를 가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차게 살아갈 거다. 그러다 보면 또 우리만의 안정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안정된 미래라는 건 없을 수도 있다. '안정된 노후'라는 건 사실 굉장히 주관적인 거니깐.
아무렴 어때.
몰라서 망할 미래를 무서워하고 두려워만 했을 때보다
모르니깐 이것저것 해보면 되지 않겠어?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가진 지금이
나를 더 응원해 주는 것 같아 더 좋은데 뭐.
"꿈은 말하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꿈이 날개가 생기고, 싹이 틉니다."
우리가 40이 되기 전에 꼭
안정된 노후를 선물해줄게.
오늘도 말하고, 내일도 말해야지.
날개가 생겨서 날아가고,
싹이 터서 무럭무럭 자라나라 나의 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