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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없던 여행의 아름다움

1박 2일 서울 여행 후기

by 영주


정말 오랜만에 좋아하는 가수가 생겼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 듣게 된 데이식스의 노래.

그 후로 한참 데이식스의 노래를 듣던 나는

여러 번 콘서트 티켓팅에 광탈했다.


피켓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어떻게 해야 가는 거지?


여기저기 알아보니 팬클럽 가입을 하면

팬클럽 선예매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거다 가보자.



그렇게 팬 아닌 팬이 된 지 2년 만에

데이식스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했다.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교통비에 숙박비에 식비에

돈이 엄청나게 깨질 거지만

또 언제 이런 추억을 쌓겠냐는 마음으로

혼자만의 서울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임산부 혼자 보내기 걱정된다던 남편은

결국 주말출근을 휴무로 바꾸고

기어이 내 손을 잡았다.



저 근데 아버님...

울집 어린이는 누가 보나요..?



시어머님께 연락드려 아이를 봐달라는 부탁까지

속전속결로 마친 울 남편의 노력을 보며

그래 이렇게 된 김에 오랜만에

우리 둘이 서울 여행이나 가보자며

나름의 서울여행 계획을 짜며


계속해서 티켓팅 사이트에 들어가

취소표가 있는지 확인하다

운 좋게 남편의 좌석까지 티켓팅에 성공했다.



이번 여행 꽤나 느낌이 좋은데?




여행을 떠나는 날,

어떤 책을 챙길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챙겨 든 '심플하게 산다.'


좋아하는 책이라 틈만 나면 읽고 또 읽는데

읽을 때마다 한 번 더 읽게 되는 페이지가 늘 다르다.




일본어에 '와비사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완전하고 투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 특유의 미학을 말한다. 이 개념은 세상의 잣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가는 개인의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미학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다.'



'와비사비의 개념은 결핍된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 준다. 결핍의 아름다움은 서서히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에 더 깊이 다가온다. 결핍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재료는 초월의 진수를 보여준다.'


결핍된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

우연에 따른 불규칙성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운치.



이 문장을 읽으니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우리의 여행에 대한 걱정이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설렘이 채우기 시작했다.


철저히 계획을 짜고,

오래전부터 어디에서 잠을 잘지 생각해 보고,

어느 식당을 갈지를 정해놓고 가는 여행이

참 편하고 좋지만


가끔 이런 충동적인 여행이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여행의 즐거움을 보여주지 않을까?





우리의 갑작스러운 1박 2일 서울여행의

첫 일정은 국립중앙박물관.


최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던 남편이 떠올라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는 일정을 잡았다. 토요일 아침이라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리뷰들을 보니 입장 줄이 빨리 줄어드는 편이라 하길래 큰 걱정 없이 왔다. 생각보다 입장 줄이 빨리 줄어들었고 우린 금방 박물관에 입장했다.




한참을 박물관 구경을 했지만 결국 다 보지 못한 우리.


박물관은 정말 정말 넓었고

하나하나 세심히 보기엔 부족한 시간에

다음에 아이와 함께 와 3층까지 다 보기로 결심했다.


박물관 굿즈 구경을 하다가

맘에 드는 기념품을 하나씩 샀다.




평소 아이와 함께 오기는 힘든

조용한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도 하고,




인생 처음으로 파인다이닝을 먹어보자며

비싼 식당에 들르기도 했다.




사실 내가 짠 여행의 일정은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고생한 남편의 소원 이루기 일정으로

하루를 가득 채웠다.


오마카세 오마카세 노래를 부르던 남편을 위해

조금은 비싸지만 코스요리 식당을 예약했고,

두 시간의 식사시간 동안 남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우리 또 다음에 이런 데 와보자!'

라는 말을 하며 다음 주 출근을 결심하는 남편을 보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급하게 예약한 호텔 숙소에서의 여행 첫날 마무리.





하루 종일 많이 돌아다녀

녹초가 된 우리는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얼마 만에 꿀잠이었는지.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늘 좋지만

가끔 부부끼리의 시간을 갖는 것도 꽤나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만의 시간...

나쁘지 않은데?





콘서트가 진행될 고양운동장 근처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 우리.


레트로한 경양식 집에서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로 점심을 먹고




스타필드까지 걸어와

스타필드 구경도 하고,


근처 카페에 들러 당충전을 하며

피곤한 듯 피곤하지 않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박 2일 여행의 마지막이자

이번 여행의 이유

데이식스 콘서트 관람까지 행복하게 마무리 한 하루.






여행을 다닐 때는 몰랐는데

느슨하게 살고 싶다라던 나의 마음과 달리

사진으로 보니 하루종일을 빈 공간 하나 없이

일정들로 가득 채웠던 여행.


하지만,

그 사이사이 카페에서 보냈던 가만히 있던 시간들.

별생각 없이 걸어 다녔던 서울의 길거리들.

기차에서 가졌던 혼자만의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이

오랜만에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연예인에 관심도 없으면서

와이프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데이식스의 콘서트를 함께 즐겨준 남편덕에

아무리 피곤해도 그저 너무 좋기만 했던

아름다웠던 여행의 순간들.




다음엔 꼭 너도 함께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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