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적당히 채워나가고 싶다.
다섯 살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주일간의 방학기간.
일주일 동안 가족 여행도 다녀오고
시댁도 다녀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보냈다.
짧은 우리 가족의 여름방학이 끝난 일상.
임신 22주 차에 접어들며 아침잠이 늘어난
임산부는 새벽 여섯 시 반에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요즘 들어 보지 못하고 있다.
잠자는 아내가 깰까 봐 조용히 나가는 건지,
아니면 아무리 우당탕탕이라도
깊은 잠에 빠져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파트 헬스장으로 출석완료.
최근 들어 무거워진 몸과
점점 붓기가 오르고 있는 종아리에
사이클만이라도 밟으려
아침마다 아파트 헬스장에 출석 중이다.
확실히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붓기가 줄어드는 것 같아 출산까지는 매일 운동을 할 계획!
자전거의 강도는 가장 낮게.
1로 해놓고 그냥 다리를 휘적이고 있는 것뿐인데도 사오십분정도 하고 나면 왜 이리 힘든지.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매일같이
살 빼야지
운동해야지
다이어트해야지
라며 운동을 하러 다닐 때와 다르게
그냥 체력 되는대로 운동하고 가자
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다니고 있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
역시 너무 높은 목표는
흥미만 잃게 만드는 것 같아.
지난여름 방학기간 동안 밖을 너무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색이 달라진 팔과 다리.
운동하는 내내 하얀 다리와 대비되는 팔을 한참 보며
아이 선크림은 잘만 발라줬으면서
내 팔은 왜 안 발랐을까라는 후회가 들었다.
다음엔 아들 챙기듯
내 몸도 챙겨야지.
아이의 하원 후, 늘 그렇듯 저녁 식사준비를 하려 하는데
갑자기 치킨과 떡볶이가 너무 당겼다.
이번 달 지출이 꽤나 많기도 하고,
장 본 게 있어서 요리를 해야 하는데...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시켜버린 노랑통닭.
늘 정갈한 살림,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싶지만
호르몬의 노예는 이렇게 한 번씩 사고를 치고 만다.
아 모르겠다.
이왕 먹는 거 맛있게 먹어야지!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들은
피곤했는지 이상한 자세로 소파에 잠이 들었다.
이런 자세로 어떻게 잠을 자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도
너무 귀여워서 사진 한컷 남기기.
다섯 살 꼬맹이는
보통 9시에 잠을 자고 아침 7시쯤에 일어나는 편인데
일찍 잠든 날은 다음 날 너무 일찍 일어나
밤부터 내일을 걱정하게 만든다.
이 요상한 자세로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든 아들을
방에 눕히며 조용히 빌었다.
내일... 너무 일찍 일어나지 마...
소원이 이루어진 건가.
일찍 잠에 들었음에도 평소의 기상시간에 눈을 뜬 아들의
아침을 챙기고, 등원준비를 하고, 등원을 시키고
어제와 똑같이 출석체크한 헬스장.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평일 주부의 일상은 늘 똑같이 흘러간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면
간단히 식사를 챙겨 먹고, 청소를 하고, TV를 보고, 책을 보기도 하는
정말 똑같은 일상.
매일이 똑같아 재미없이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주부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지루한 일상에 못 이겨
사소한 일이라도 만들어 몸을 움직이곤 했다.
워킹맘 시절에는 그렇게 쉬고 싶어 했으면서
전업주부가 되고는 이리도 쉬지 못하는 내가
어느 날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
그냥 느슨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오전 내내 비축해 둔 에너지는
하원한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아들과 둘이 집 앞 카페에 가
요즘 울 아들 원픽인 소금빵과
디카페인 커피 한 잔 마시며
수다 떠는 시간을 만들기도 하고
매일 20분씩 하는 학습지 공부도
옆에서 함께 봐주며
아이의 앉아있는 시간을 도와주기도 하고
밥 먹고 씽씽이를 타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놀이터에 따라 나와
함께 달려줄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퇴근한 남편과의 저녁시간을 보내며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수다의 시간까지
즐길 수 있는 에너지.
느슨하게 살았던 오전 덕에
저녁까지 하루를 무난히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더더욱 느슨하게 살아볼 예정이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서
너무 채우려 하지 않고
조금은 힘을 풀고 느슨하게.
그렇게 적당히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