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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y 10. 2023

은퇴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버님의 포도밭


몇 해 전 시아버지께서 하던 일을 그만두셨다.

간단히 말하자면 은퇴를 하신거다.


수십 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셨으니, 이제 여유롭게 쉬지 않으실까라며 우리 부부는 생각했으나, 우리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버님은 그리 큰 평수는 아니지만 적당한 크기의 땅에 하우스를 짓고 포도나무를 심으셨다.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

농부가  아버님.


처음 포도농사를 시작한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나와 남편은 적잖이 당황했다.


일이 많아서 힘드시지 않을까?

혼자 일하시기 괜찮으실까?



돈 걱정이 사라지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직장을 다닐 때 미뤄 두었던 어릴 적 꿈을 다시 꺼내어 도전하게 되지 않을까? 밥만 먹을 수 있다면 평생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다던 어느 무명화가의 바람처럼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일을 하고 싶지 않을까?_<파이어족의 재테크>, 신현정, 신영주






머릿속은 아버님에 대한 걱정과 잘 모르는 농사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찼지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아버님 앞에서 티내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응원만 했다. 농사를 시작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아버님이 분명 더 걱정을 하셨을 거고,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셨을 테니 더 이상 입을 대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웃으며 아르바이트생으로 써달라 했다.


나중에 바쁠 때 일하러 갈게요,

일당 조금만 챙겨주세요~





은퇴라는 건 일을 그만두고 노는 게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즐기고 몰입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함을 알려주는 시기이기도 한다고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나에게 아버님의 '포도밭'은 언젠가 들은 적 있던 이 말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만드는 곳이다.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




며칠 전 만난 아버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않고, 식사도 하지 않은 채로 농사와 관련된 유튜브를 보고 계셨다. 거실에 앉아 방에서 들려오는 아버님의 유튜브 영상소리를 한참을 가만히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을 이렇게까지 열정 있게 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이기에 가능한걸까?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작년 한해간 서점을 운영하며 매일같이 책과 서점에 대한 공부를 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아버님의 지금 마음이 그때의 내 마음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뭐라도 더 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고 싶어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 아닌 공부를 하던 때.



파이어족이 말하는 은퇴란 ‘경제적 자립을 통해서 억지로 해왔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퇴 후에는 나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일,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찾아서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_<파이어족의 재테크>, 신현정, 신영주



꼭 파이어족 아니더라도 나 역시 은퇴를 하는 순간은 올 거다.


40세 일지, 50세 일지. 언제가 될지 모를 은퇴 이후 나 역시 인생 2막 시작될거다.


내 인생 2막의 시작점은 모르지만, 그 시작점에 서있을 때 아버님의 '포도밭'과 같은 존재가 내 곁에 꼭 있었으면 한다. 온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일, 나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일, 나의  심장을 뛰게 해주는 '나만의 포도밭'이 나의 은퇴 시기에 꼭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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