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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un 05. 2023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놈에 '잘' 때문에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무기력했다.


딱 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인해 틈만 나면 두통이 생겼고, 어깨와 목은 매일같이 뭉쳤다. 자세 때문인지, 일 때문인지, 비가 자주 오던 요즘 날씨 때문인지 정확히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힘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그냥 살았다.

퇴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루틴을 잠시 버려두고 그냥 놀고 싶은 대로 놀았다.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냥 누워있기도 하며. 예전에 참 싫어했던 널부러져 있던 내 모습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싫어도 어쩔 수 없었다. 무기력해지고 게을렀던 지난 한 달, 그렇게 쉬고 쉬고 쉬다 보니 오늘이 됐다. 오늘 참 오랜만에 책을 읽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고,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몰라 한참을 손에서 놨던 글쓰기.


그냥 글 쓰는 게 재밌어서 매일같이 글을 쓰던 나는 언제부턴가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욕심은 나쁜 게 아니다. 적당한 욕심은 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얻게 해주기도 한다. 그동안 욕심들 덕분에 난 취업을 했고,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결혼을 했다. 적당한 욕심들 덕분에.


그런데, 이번 욕심은 나의 글쓰기를 멈추게 만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글을 쓰며 소소하게 날 즐겁게 해 주던 나의 취미생활을 멈추게 만들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내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만들었, 왜 나는 이 사람처럼 글을 못쓰는 거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오랜만에 남과 비교하게 만들었다. 비교.



한번 시작된 비교는 멈출 줄을 몰랐다. 비교의 길에서 나라는 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휴게소 하나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 브레이크 한 번 밟을 수 없이 계속해서 달리는 기분. 결국 나는 가드레일을 았다. 비교의 길에가드레일을 박고 그대로 꼬꾸라진 나는 글쓰기를 멈추었다. 그럼에도 내 차멈추지 못했다. 꼬꾸라진 채로 바퀴는 계속해서 돌다.

'이렇게 힘들어도, 그럼에도 누군가는 매일 쓰잖아.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는 거야.'



그냥 떠나고 싶어 진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싶은 마음. 남과 비교하는 동안 내 마음에 가랑비가 내렸다. 조금씩 내리는 빗물에 젖어가고 있는줄도 몰랐던 내 마음은 이미  젖어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날이 이렇게 더운데도 추웠다. 옷을 벗어야만 했다.


비교하는 마음을 버려야만 했다.



오늘 하루종일 혼자 쉬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 거의 누린적 없었던, 정말 오랜만에 누 혼자만의 시간. 집에 있으면 눈에 밟히던 집안일들 모른 체하며 청소도, 공부도, 뭣도 하지 않고 가만히 거실에 누워서 멍을 때렸다. 사색에 잠겼다는 멋들어진 표현이 있지만, 그냥 누워서 멍 때리고 있었다는 게 더 어울렸다. 멍 때리다 보니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책장에서 눈에 들어온 책 하나를 꺼냈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읽었다.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들이 하나하나 눈에 찼다.



오랫동안 원했던 테라스 있는 집,

그렇게 사고 싶다고 노래 불렀던 비스포크 정수기,

월급 탈 때마다 한 권씩 산 책들로 가득 찬 책장.


미니멀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나에게 집안 곳곳에 있는 물건들은 그간 내 삶을 말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닌 컵 하나에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청소기까지도 하나하나 시선이 머물렀다. 미니멀해야 한다며 무조건 버리겠다는 마음가지고 집을 바라봤을 땐, 왜 물건들을 샀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집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은 그냥 버려야 하는 쓰레기로만 보였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내가 원했던 넓은 집을, 넓어서 좋다고 들어온 집을 미니멀하지 않다며 이사 가고 싶어 하기만 했었다.



어떤 주제가 있어야만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어라고 착각했던 마음. 그냥 글 쓰는 걸 좋아해 시작한 글쓰기인데 시작할 당시의 마음가짐은 어느새 사라지고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 차 있었다. 의미 있는 물건들마저도 모두 버려야만 미니멀 라이프가 완성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잘하고 싶다는 마음,

잘 살고 싶다는 마음,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


그놈에 잘 때문에 인생이 ㅈ같아질 뻔했다.

(더 예쁜 말을 도저히 못 찾겠다 지금은 ㅎㅎ)



거실에 가만히 누워 지난 삼십 년간의 내 삶을 생각해 본다. 잘하는 거 하나 없이도 잘 살아왔다. 아니 살아왔다. 어찌 됐든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게 잘이든, 못이든, 뭐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썼다.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 일상이 다시 평안지기 위해서 그냥 써내려가야 함을 알때문에, 그냥 살아가야 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냥 쓰고, 그냥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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