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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un 27. 2023

썸 타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결혼 5년 차 부부




달달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친구 썸 타는 이야기 같은 것.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영화도 좋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들이 더 좋다. 썸은 어떻게 탔는지, 고백은 뭐라고 했는지, 더 주책맞게는 뭐가 좋은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하나씩 듣는 게 너무 좋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이야기들이 풋풋한 게 좋아서.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는 게 참 좋아서.





30대를 넘어서자 주변에는 결혼한 친구들이 늘어났고 설레는 썸 타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술자리 안주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달달함이 필요할 때마다 사진첩을 열어 연애 초 남편과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씩 다시 보며 스스로 당충전을 할 때가 있다. 그 시절 사진만 봐도 어색한 기류가 느껴지는 우리의 연애 초기. 어색한 둘 사이 묘한 어색함이 이상할치만큼 좋아 보기만 해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항상 연애초기처럼 달달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사랑이라는 건 그렇지 않다. 잡기만 해도 찌릿하던 남자친구의 손은 어느 날부터 그냥 따뜻한 핫팩처럼 느껴지고, 눈 마주치기만 해도 빠르게 뛰던 심장은 건강함을 증명하듯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완벽한 연애라 생각했던 사이에 권태로움이 찾아오기도 하, 그렇게 좋아서 사귀었던 내 남자의 좋은 점은 싸움의 원인이 되어 다신 안 볼 것처럼 진탕 싸우기도 한다.



연애만 그럴까? 결혼을 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에 익숙함과 편안함이 하나둘 채워진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설렘보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싱거운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 간이 맞지 않아 싱겁고 밍밍하기만 한 음식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려고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평일 내내 피곤했던지 푹 자고 눈을 떴는데, 왼쪽 손은 아들이 꽉 잡고 있었고 반대쪽 어깨는 남편에게 잡혀 있었다. 아직 곤히 잠든 두 남정네를 보다 조용히 몸을 일으키자 손잡고 자던 아들이 깼다. 그리고 그 소리에 잘 자던 남편도 따라서 깼다. 누워서 자던 아들은 어느새 '엄마-'를 외치며 침대를 내려가고 있었고, 아직 잠이 덜 깬 남편은 잘 잤냐는 질문을 해오며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늘 보던 일상이었는데, 익숙하고 편안함이 채워진 집인데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잘 잤냐 물어보는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언제부터였더라? 언젠가부터 연애초의 달달한 감정들은 이제 더는 느끼지 못하며 살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건 곧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라며 남편과의 달달함은 생각도 않고 살아왔는데, 어쩌면 나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 속에 달달함이 숨겨져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다정한 남편의 애정표현을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 없던 아침이었다. 

그냥 그날 아침 유독 푹 잤고, 아들이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남편 목소리가 참 다정히 들려왔다. 





괜히 기분이 좋아 아침을 차려준다며 주방을 향했다. 편안함과 익숙함 속에서 알게 모르게 설렘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글거리는 말과 느끼하다는 말로 웃어넘기려 했던 것뿐이지-


간단히 어제 먹고 남은 음식들로 아침을 차렸다. 아침 먹자고 부르자 주방으로 오는 웃는 얼굴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쩌면 매일이 달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연애초기 사진들을 찾아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달달하고 설레는 순간들이 앞으로 종종 찾아올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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